'위험' 경고에도 3년 넘게 손 놓은 한국…부채 축소 실패 [강진규의 데이터너머]

입력 2024-03-06 09:43   수정 2024-03-06 10:04

국제결제은행(BIS)이 한국의 민간부채 규모에 대해 또 다시 '위험' 경고를 내렸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채가 장기 추세를 크게 웃도는 상황이 3년 반째 이어지고 있어서다. 긴축적 통화정책을 한다며 금리를 올린 국가 중 부채 축소에 실패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BIS "한국 부채 '위험' 수준"
6일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신용 갭은 지난해 3분기 말 10.5%포인트로 집계됐다. 지난 2020년 2분기 말 12.9%포인트를 기록한 이후 14분기 연속 10%포인트 선을 넘었다.

신용 갭은 명목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장기 추세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보여주는 부채 위험평가 지표다. 민간신용 비율의 상승 속도가 과거 추세보다 빠를수록 갭이 벌어지는데, BIS는 잠재적인 국가별 신용위기를 가늠하는 데 이 지표를 사용한다.

BIS는 신용 갭이 10%포인트를 초과하면 '경보' 단계, 2~10%포인트면 '주의' 단계, 2%포인트 미만이면 '보통' 단계로 각각 분류한다. 한국은 2020년 2분기부터 '위험' 경고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는 지난 1972년 관련 통계 작성 후 최장기간이다.

한국의 신용 갭은 지난 2017년 4분기 말(-2.9%포인트)을 변곡점으로 상승 전환했다. 2019년 2분기 말(3.0%포인트) 주의 단계로 진입했다. 코로나19 이후 가계와 기업의 빚이 급격히 늘면서 신용 갭은 가파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2021년 3분기 말(17.4%포인트)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하락 추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10%포인트를 웃도는 상황이다.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지난해 3분기 말 225.5%로 나타났다. 2020년 1분기 말(200.0%) 이후 15분기째 200%를 웃도는 상황이다. 지난해 3분기 말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1.5%,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24.0%로 각각 집계됐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이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외환위기 때는 1997년 4분기 말(13.2%포인트)부터 1998년 3분기 말(10.5%포인트)까지 1년간, 금융위기 때는 2008년 4분기 말(10.7%포인트)부터 2009년 4분기 말(11.2%포인트)까지 1년 3개월 간만 위험 경고를 받았다. 앞서 1980년대 초반에도 두 차례 10%포인트를 넘은 적이 있지만, 그런 상황이 1년 넘는 기간 연속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마이너스 금리' 일본과 같은 성적표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의 부채 위험은 더 두드러진다. 지난해 3분기 말 신용 갭이 10%포인트를 초과한 국가는 BIS 조사 대상 44개국 가운데 일본(13.5%포인트)과 한국뿐이었다.

다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0.50%에서 연 3.50%로 3%포인트 높이는 동안 일본 중앙은행(BOJ)은 연 -0.1%의 금리를 유지했다. 장기수익률 곡선(YCC)의 허용치를 조정한 정도였다. 물가와 부채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린 한국과 부채 증가를 사실상 용인한 일본이 '위험' 경고라는 똑같은 성적표를 받은 것이다.

그외 국가는 신용 갭이 크게 낮아졌다. 44개국 중 태국(8.0%포인트), 사우디아라비아(2.2%포인트), 아르헨티나(1.5%포인트), 독일(0.0%포인트) 등 소수의 나라를 제외하면 신용 갭이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가계·기업부채에 정부부채까지 더한 우리나라의 총부채 규모는 지난해 3분기 말 5988조191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29조8614억원 더 늘었다. 총부채 규모는 지난해 4분기 말 기준으로 사상 첫 6000조원 돌파가 유력해 보인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채 증가율 둔화 속도가 너무 느리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부동산발 금융위기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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