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장비에 쓰이는 밸브류를 생산하는 P사는 스냅링 부품을 최근 중국산으로 바꿨다. 발주처의 까다로운 요구에 그동안 값싼 중국산을 멀리했으나, 품질 면에서 손색이 없다는 걸 확인하면서다. 국내 부품 업체들은 그만큼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소비재도 마찬가지다. 중국산 로봇청소기가 국내 시장을 휩쓸고 있다. 배송료도 받지 않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직구 사이트의 공세는 섬뜩할 정도다.
중국의 부상은 일찌감치 예고된 악재다. 중국이 ‘중국제조 2025’ 전략을 발표한 건 2015년이다. 중국 제조업의 질적인 기술 도약을 통해 세계 최강의 제조 강국으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기업, 대학, 연구기관, 관련 학회 전문가 400명 이상이 총동원됐다. 중국이 1898년 설립된 독일 최대 로봇기업 ‘쿠카’, 화학공정설비 제조사 ‘크라우스마파이’ 등을 인수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우리나라도 역대 정부에서 다양한 중소 제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변변한 성과를 낸 사례를 떠올리기 어렵다. 정권이 교체되거나 심지어 장관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전략을 누더기처럼 덧칠하느라 지속 가능한 동력을 얻지 못한 탓이다.
오히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제조업의 혁신 투자 의지를 꺾는 자충수를 남발하기까지 했다. 미래 성장의 씨앗인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조치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총체적이고 획기적인 구조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다. 제조업의 위기를 이대로 방치하다간 머지않아 ‘경제적 속국’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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