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연여고 2학년 5반의 학급회의가 시작된다. 아이들 얼굴엔 긴장과 불안이 가득하다. 투표 결과에 따라 A부터 F까지 서열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꼴찌인 F등급은 얻어맞고 따돌림당해도 저항해선 안 된다.
지난달 29일 방송을 시작한 티빙 10부작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사진)의 설정은 흥미롭다. 성적 및 체력, 집안의 재력이 아니라 아이들의 투표로 ‘왕따’를 결정한다니. 주인공은 백연여고에 막 전학 온 성수지(김지연 분). 낯선 게임에 방심했다가 왕따로 전락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정했던 친구들이 온갖 폭력을 휘두른다.
모든 아이들이 투표 게임에만 몰두하는 모습은 기이하다. 한 표를 더 받기 위해 온갖 아양과 술수, 폭력까지 쓰는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르지 않다. 돈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게임에 뛰어든 자들의 이야기 ‘오징어 게임’처럼 ‘피라미드 게임’ 또한 대한민국 교실을 사회의 축소판으로 삼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피라미드 게임’의 초반은 다소 빤하게 흘러가지만 성수지가 게임 자체를 깨부수겠다고 선언하면서 본궤도에 오른다. 게임을 설계한 ‘특별한 아이들’의 비하인드가 밝혀지는 것도 이때부터다. 교실 밖의 역학 관계, 학부모들의 네트워크가 아이들 이야기에 끼어들며 설득력을 확보하기 시작한다. 성수지는 마냥 착한 아이가 아니다. 오랜 전학 생활 덕분에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 능수능란할 뿐 아니라 자신의 편을 규합해 질서를 흩뜨릴 줄도 안다. 자기 자신만 알던 얄팍한 캐릭터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피라미드 게임’은 리얼한가. 투표 한방으로 학급 생활이 결정되는 아이들은 더 힘들까. 성적 경쟁에 매몰된 현실 고등학생보다 더 처절해 보이는 것이 아이러니컬하다. 교실 속 서열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빼놓을 수 없는 주제였다. 신체적 힘(누가 더 잘 싸우나)과 세력(같이 싸울 놈이 많은가)이 위계를 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군사주의 문화와 우열반이 남아 있던 1970년대. ‘말죽거리 잔혹사’(2004)처럼 옥상에서의 한판 몸싸움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게 오늘날 서열인 모양이다.
부모의 재력과 권력, ‘상승 의지’가 아이들에게 침투했던 ‘스카이캐슬’(2018)을 거쳐 ‘피라미드 게임’의 교실은 어디까지 나아갈까. 성수지는 아이들의 마음까지 얻으며 게임을 깨부술 수 있을까. 전형적인 선악 구도와 다소 편의적인 설정을 극복하고 드라마의 깊이를 획득하느냐가 관건이다.
신예 배우들의 연기 호흡은 안정적이다. 그룹 우주소녀 멤버 김지연(보나)이 주인공 성수지를 맡았고, 아이브 장원영의 언니인 장다아가 그 상대인 백하린을 연기했다. ‘피라미드 게임’은 오는 21일 10회까지 모두 공개된다.
김유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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