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올해 홈 인테리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차분하지만 우아하고, 미니멀하지만 고급스러운 공간. 따뜻한 색감과 동글동글한 곡선의 가구가 어우러진 집에 들어서면 누구나 마음이 툭, 내려앉는다. 하우스(house)가 아니라 홈(home)에서 우리는 마음의 안정을, 몸의 휴식을 찾는다. 그게 집이다.
포브스는 올초 2024년 인테리어 트렌드로 12가지 특징을 꼽았다. 곡선 형태의 가구, 큰 액자, 대담한 색상, 단색 조명, 현대적 주방, 개인화된 공간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조용한 럭셔리’다. 럭셔리라고 하면 비싼 가구를 떠올리겠지만 진정한 럭셔리는 스스로의 만족감이다.
공간 인테리어로 몸과 마음의 최적점을 찾는 건 어렵다. 색감과 소재, 디자인 모두가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브라운 톤만 생각해도 수만 가지가 넘는다. 그 다양한 레이어 중 내가 원하는 색을 찾아 정확히 원하는 사이즈와 소재까지 맞추는 일은 보물찾기에 가깝다. 그런 가구 하나하나가 모여 ‘홈 스위트 홈’이 완성되는 것.
국내에서 분석한 올해 디자인 트렌드도 맥락을 같이한다. 매년 트렌드를 분석하고 있는 LX하우시스는 올해 키워드로 ‘고요한 파동’ ‘본질의 미학’ ‘낯선 데자뷔’를 꼽았다. 고요한 파동이란 감정의 순환을 돕는 시적 무드의 공간을 말한다. 물결처럼 유연하게 흐르는 곡선 형태의 디자인, 감정을 편안하게 해주는 감성적 공간 말이다. 날카로운 직선으로 꾸몄던 예전 공간을 유려한 곡선으로 대체하고, 업무와 집의 경계를 허무는 홈 오피스를 과감하게 배치하는 것도 고요한 파동 트렌드에 속한다.
부드러운 소재의 특성을 강조하고, 눈을 편안하게 해주는 뉴트럴 계열로 침실을 꾸미는 일, 자연의 색감을 택하는 것은 본질의 미학을 살리는 방법이다. 그렇다고 천편일률적인 인테리어를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집안 한쪽에 오렌지 색감의 가구만 배치해 생동감 있는 휴식의 공간으로 꾸민다거나 블루톤의 화장실, 그린톤의 침실 등을 만들어 포인트 컬러를 주면 편안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나만의 공간이 완성된다. 뉴트럴 컬러톤의 가구로 거실을 꾸미되 한쪽 벽엔 밝은 원색의 대형 액자를 거는 것처럼 창의성과 유머, 취향을 드러내는 공간이야말로 모든 봄에 어울리는 ‘홈 스위트 홈’ 아닐까.
올해 거실 트렌드는 '곡선 가구'
알플렉스·박스터 등
럭셔리 소파 하나로도 존재감
브라운 계열로 따뜻함 채우고
파스텔톤 섞어 화사함 포인트
구름 위에 앉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폭신폭신해 보이는 재질의 소파, 어린아이가 아무렇게나 그린 것 같은 자유로운 모양의 티 테이블, 아늑한 느낌을 주는 커튼과 내 취향이 가득 담긴 오브제들. 눈에 거슬리는 것 하나 없이 유려한 곡선으로만 채워진 거실 풍경이다.
포브스가 꼽은 올해 트렌드 중에는 ‘곡선 가구’가 1번으로 등장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케이트 도슨은 “2024년엔 몇 년 동안 유행한 곡선형 소파와 의자가 더 다양한 형태로 확장될 것”이라고 했다.
가구 디자인에서 곡선은 그동안 모서리만 둥글리는 데 쓰였다. 이젠 티 테이블, 가구의 단면, 선반 등 더 많은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얘기다. 거울, 벽에 건 액자 속 그림, 달항아리, 화병, 조명의 갓, 서랍장의 손잡이, 쿠션의 모양 등 곡선을 활용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거실은 대부분의 집에서 중심 역할을 한다. 방과 방을 오가는 연결고리이자 퇴근 후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 곳이기도 하다. 서재, 주방으로 가기 전 잠시 쉬거나 그냥 멍 때리며 앉아 있는 곳. 그래서 포근하고 아늑해야 한다. 내 마음에 쏙 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색상이든 디자인이든 배치든.
선택지는 다양하다. 질감이 한눈에 보이는, 딱 봐도 따뜻한 패브릭 소재의 널찍한 소파를 거실 한가운데 둘 것인지, 아니면 서재처럼 거실을 꾸미고 한쪽에 고급 가죽으로 만든 1인용 리클라이너를 둘 것인지.
물론 소재는 그 반대도 가능하다. 소파가 주인공이라면 이탈리아 럭셔리 가구 브랜드 박스터의 체스터문, 알플렉스의 유주처럼 소파 하나만으로도 존재감 확실한 가구를 들이면 된다. 국내 브랜드 중에는 까사미아 비엔나 소파, 현대리바트 마이스터컬렉션 쿠스 소파 등 곡선 형태를 강조한 패브릭 소재의 가구가 많이 나와 있다.
색상은 아이보리, 베이지, 브라운 같은 따뜻한 색감이 올해도 트렌드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뒤발 디자인 LLC에 따르면 소파의 직물뿐 아니라 선반, 수납장, 오브제 등에서도 브라운, 갈색 계열이 인기를 끌 것이란 전망이다. 물론 브라운만으로는 칙칙해 보일 수 있으니 여기에 어울리는 누드핑크, 아이보리나 블루, 파스텔 컬러로 화사함을 섞는 것이 좋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큰 그림 몇 점을 마주보는 벽에 걸어놓을 수도 있고 유명 디자이너의 테이블이나 수납장 위에 달항아리를 툭 얹어놓을 수도 있다. 거실 전체를 뉴트럴 계열로 무난하게 구성하되 한쪽 벽면에는 튀는 색상의 포스터를 걸어놓아도 좋다.
핫핑크, 진한 녹색 같은 컬러풀한 조명, 전화기, 스피커 등을 포인트로 두는 것도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다.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하는 ‘식집사’라면 커다란 화분을 거실의 주인공으로, 소파 옆 볕이 잘 드는 곳에 배치하면 어떨까. ‘미술관’이든 ‘식물원’이든, 내가 원하는 공간으로 거실을 꾸미는 것이야말로 홈 인테리어의 시작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 침실서 아늑하게
거실과 맞춘 곡선 스타일도
살아가는 공간에서 가장 은밀하고 조용한 장소. 침실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그곳. 하루의 마무리이자 하루의 시작인 어쩌면 집을 구성하는 모든 공간 중 가장 중요한 그것이다. 각자가 꿈꾸는 침실의 풍경은 제각각이겠지만 좋은 침실의 기준은 명확하다. 포근할 것, 그리고 아늑할 것. 그러려면 걸리적거리는 게 없어야 한다. 침실 역시 ‘미니멀리즘’이다.
침실에서 가장 중요한 가구는 단연 매트리스다. 침대 프레임, 헤드 등을 아무리 고급스러운 것으로 들여도 몸을 뉘는 매트리스의 품질이 떨어지면 숙면을 취하기 어렵다. 매트리스의 단단한 정도는 몹시 다양한 데다 브랜드마다 특성도 제각각이다. 매트리스를 새로 장만하려 한다면 무조건 누워보고 고르는 게 좋다. 푹신한 소프트 타입의 매트리스를 좋아하는 줄 알았던 사람도 실제 체험해본 뒤에는 허리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하드 타입 매트리스를 고르는 일이 잦다.
침대 헤드는 매트리스만큼 중요하다. 잠들기 전 독서를 즐긴다면 책을 꽂아둘 수 있는 헤드를, 구름처럼 동글동글한 거실과 분위기를 맞추고 싶다면 아망드(에이스침대)처럼 구름 모양 헤드를 골라도 좋다. 곡선을 강조한 거실과 비슷하게 꾸미고 싶다면 벙커 형태의 침대 테두리를 둘러싼 스타일이 잘 어울린다.
싱그러움을 더하고 싶다면 공기 정화 기능을 갖춘 식물을 침실에 들여놓으면 어떨까. 톤다운된 그린 계열로 침구를 선택하고 식물을 곁에 두면 눈이 편안한 침실 분위기가 완성된다.
사무실을 집으로, 홈오피스의 신세계
대리석·패브릭 등 믹스매치
조용한 자연의 분위기 연출
일과 휴식의 경계 허물어
느지막한 오후, 낮게 깔리는 햇볕이 책장을 훑어 내리쬔다. 볕과 목제 가구가 한데 어우러져 마치 숲속에 오롯이 혼자 있는 기분이 든다. 창을 넘어 불어오는 봄바람 내음을 맡고 있으면 머릿속이 한결 맑아진다. 그 어떤 것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격조 있는 나만의 공간 ‘홈 오피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은 꿈꿔볼 공간이다.
책상과 의자 그리고 책장만 놓으면 서재 인테리어가 ‘끝’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휴식에 최적화된 집에서의 서재는 독서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쯤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집과 서재에 대한 개념이 사뭇 달라졌다. 가볍게 책을 읽는 수준을 넘어 화상 회의, 집중해서 업무를 해야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홈 오피스라는 개념이 자리 잡았다.
책상은 꾸밈없는 직사각형 상판에 너비가 넓은 다릿발을 ‘V자’ 형태로 배치한 독특한 디자인이 세련된 분위기의 홈 오피스를 완성한다. 특히 V자 형태의 다릿발은 다소 투박해 보일 수 있는 디자인에 세련미를 더하고, 상판을 안정감 있게 받쳐준다. 책장은 세로로 뻗은 수직 라인을 양각 효과로 강조해 단조로운 일반 책장과 차별화를 꾀한다. 신세계까사의 까사미아는 하벨 홈 오피스 시리즈에서 이 같은 모던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자연과의 융합은 소재를 목재로 쓰거나 실내에 식물을 두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테리어를 통해 친환경을 실천하는 것 또한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거나 LED(발광다이오드) 조명과 같은 에너지 효율적 제품을 홈 오피스에 두면서 탄소 배출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인테리어가 주목받고 있다.
각종 오브제와 책을 올려두는 인테리어는 고급스럽고 우아함이 돋보이는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대리석 패턴 벽지를 이용해 무게감을 더하면 풍요로운 대자연의 모습이 연출된다. 스톤, 우드, 패브릭 등 풍부한 질감을 섞어 단조롭지 않으면서도 오래된 느낌은 덜 주도록 꾸미는 게 좋다.
작업 공간과 함께 작은 라운지를 연상시키는 휴게공간을 한쪽에 두는 인테리어는 LX하우시스가 꼽은 올해의 홈 오피스 트렌드다. 일과 휴식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나만의 공간을 원하는 인테리어 트렌드는 계속된다. 맞춤형을 추구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특성이 인테리어 트렌드에도 반영되는 셈이다.
고급 바에 온듯…일체형 아일랜드
주방 인테리어의 핵심은 기능이다.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식탁을 이어 붙이거나 디귿자로 디자인하는 등 원하는 기능에 맞춰 꾸미는 것. 차가운 소재, 색감으로 주방 가구와 가전을 들였다면 식탁은 우드 계열이나 화이트, 베이지 톤으로 선택해 따뜻한 감성을 더하는 것도 좋다. 이탈리아 럭셔리 주방 브랜드로 유명한 발쿠치네는 마치 바에 온 듯한 디자인의 식탁 일체형 아일랜드를 모던한 감성으로 풀어냈다. 요리하는 사람과 마주볼 수 있도록 나무 소재로 바 형태의 식탁을 아일랜드에 붙여 디자인한 것.
너무 차가운 느낌이 싫다면 우드 소재에 색상을 더한 아일랜드로 포인트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의자를 들여놓을 수 있게 한쪽 면을 들여 짠 우드 소재의 아일랜드는 상판을 대리석이나 스톤으로 선택하면 요리하기에도 불편함이 없다.
서재 기능을 주방에 더하는 것도 최신 트렌드 중 하나다. 홈 오피스를 갖추는 게 ‘필수’가 됐지만 그럴 만한 공간이 부족하거나 1인 가구라면 주방 겸 서재로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서재형 주방을 꾸미려면 채도가 낮은 색으로 책상 겸 식탁, 책장 등을 갖추는 게 좋다. 책장에는 책과 와인잔, 그릇 등을 무심하게 툭 배치한다. 책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노트북을 꺼내 업무를 하다가 ‘퇴근’ 모드엔 와인을 한 잔 마시는, 일상의 작은 기쁨이랄까.
꼭 업무 공간이 아니어도 좋다. 주방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그림을 그리고 뜨개질을 한다든지 레고 조립을 하면 어떤가. 취미 공간으로도 주방은 손색이 없다. 여러 벌을 겹쳐 입어 매력을 뽐내는 ‘레이어드 룩’처럼 ‘레이어드 리빙’이 트렌드의 중심이 되고 있다.
호텔 라운지처럼 모던한 스타일의 주방을 새로 선보이는 곳은 많다. 이탈리아 명품 가구들뿐 아니라 한샘, 까사미아, 에넥스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슬림한 조명으로 포인트를 준 호텔 라운지형 주방은 깔끔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레이어드 선반장, 붙박이장 등으로 수납 기능을 살렸다. 한쪽 수납장 안에 커피머신, 토스터기, 에어프라이어, 예쁜 머그컵 등을 한데 모아 홈 카페처럼 꾸미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겉으로 보기엔 서재나 취미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주방의 기능을 숨겨놓을 수도 있다. 요즘은 레드, 핫핑크 등 튀는 색상으로 꾸미는 이도 많다.
민지혜/최형창/김동주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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