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기업 이노그리드가 얼마 전 한국거래소의 역대 최장 심사 기록을 다시 썼다. 지난해 2월 신청했는데 11개월 만인 올 1월 심사를 통과했다. 이 회사는 오는 5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한다. 예비심사부터 상장까지 1년 넘게 걸리는 셈이다.
상장 추진 기업이 한국거래소 예비심사에 6개월 넘게 묶여 있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당초 한두 달 남짓이던 심사 기간이 길어져 새롭게 신청한 기업 수십 곳이 정체 대열에 가세하는 형국이다. 자본시장의 핵심 통로에서 역대급 ‘병목’ 현상이 벌어지며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는 스타트업과 벤처기업들의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상장 예비심사를 받는 곳은 41곳이다. 이 중 28곳이 지난해 하반기에 심사를 청구했다. 심사 기간과 대상 기업 수 모두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다. 이엔셀 등 바이오 회사 2곳은 8개월째 심사 중이다. 거래소 상장 규정상 거래소는 원칙적으로 심사 신청을 받은 뒤 45영업일 이내에 결과를 통지해야 한다. 원활한 상장 환경 조성을 목표로 마련한 규정이다. 그런데 최근 원칙대로 지켜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거래소의 평균 심사 기간은 매년 신기록을 경신 중이다. 2019년까지만 해도 50일이 안 됐지만, 매년 늘어 지난해 85.4일에 달했다. 올해는 90일을 넘길 가능성이 크다.
투자업계에서는 바이오·플랫폼·인공지능(AI) 등 새로운 사업 모델을 내세운 기업이 몰려드는 가운데 한국거래소의 심사 역량과 인력이 이를 쫓아가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례 상장을 신청한 기업은 대부분 실적이 좋지 않아 재무제표 숫자 뒤에 있는 성장 잠재력을 판단해야 하는데 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증권사들이 주관사 수임 경쟁을 하면서 제대로 검증이 안 된 기업을 마구잡이로 상장 심사에 올리는 것도 병목 현상이 누적되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뻥튀기’ 상장 논란을 빚은 파두가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최석철/배정철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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