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와 같은 대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건 시장성이 입증됐다는 거잖아요. 스타트업이 대기업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빠른 실행력을 살려 차별성을 만들어가면 됩니다."
개인별 혈당 데이터 기반 건강 관리 애플리케이션(앱) '글루코핏'을 개발한 양혁용(32) 랜식 대표는 "전망이 밝은 시장일수록 경쟁은 불가피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는 서비스를 만들어 망하는 케이스가 경쟁사 때문에 망하는 경우보다 많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2022년 11월 출시한 글루코핏은 똑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개인마다 혈당 반응에 차이가 있다는 의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국내 최초의 혈당 관리 솔루션이다. 앱과 패치형 연속혈당측정기(CGM)로 구성돼있는 구독형 서비스다. 팔에 CGM 부착 후 앱을 통해 실시간 혈당 수치를 모니터링해 몸에 잘 맞는 식단을 확인하고 생활 습관을 교정하는 원리다.
1~2년 전부터 랜식, 닥터다이어리 등 스타트업을 필두로 CGM을 활용한 건강 관리 서비스 사업이 시작됐다. 지난 2월에는 카카오헬스케어가 '파스타'라는 서비스로 혈당 관리 시장에 뛰어들어 다시금 주목받았다
양 대표는 단국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 출신 창업가다. 2022년 6월 의사 면허 취득 직후 병원 대신 창업을 택했다. 그는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군 전역 후 보건소에서 근무했을 시기가 코로나19였다"며 "빠르게 늘어나는 환자로 보건소가 마비되는 경험을 하면서 '애초에 사람들이 질병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헬스케어 분야 창업을 떠올렸다"고 전했다.
사업 아이템을 구상할 땐 개인의 고민에서 떠올렸다. 그는 "나도 저탄고지, 간헐적 단식 등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다. 공부로 잦은 밤샘을 하다 보니 몸무게가 15kg씩 찌고 빠지기 일쑤였다"면서 "본래 당뇨 환자가 사용하는 CGM을 붙여 식후 혈당이 치솟는 '혈당 스파이크'를 찾아 식단을 조절하는 방법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시장성과 의학적 근거를 파악하고 본격적인 개발에 돌입했다. 대한당뇨병학회에 따르면 국내 당뇨병 환자는 600만명, 당뇨 전 단계 인구는 1500만명에 이른다. 시장성은 두말할 것 없었다. 양 대표는 "혈당과 관련 있는 당뇨, 고혈압, 비만 등의 대사 질환은 사실 병원에서 해결할 순 없다"면서 생활 습관 관리가 중요한 질병임을 강조했다.
의학 근거의 경우 국제학술지인 'CELL'지에 실린 '혈당 반응 예측을 통한 맞춤 영양'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기반으로 한다. 수면 시간, 음식 섭취 시간, 음식 섭취 후 활동량, 인슐린 분비량 등 개인별로 지닌 선천적 기질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음식이라도 사람마다 혈당 반응이 다르다는 것이 골자다.
1년 넘게 직접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해보고, 이용자를 모아 개인별 데이터 확보해가며 혈당 다이어트 서비스를 출시하는 데 성공했다.
애보트사의 '프리스타일 리브레' CGM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혈당을 파악하고,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혈당 변화 추이를 통한 생활 습관 관련 조언을 해준다. 식단, 운동량 등 상세한 건강 정보를 기재하면 양 대표를 포함한 의사 자문단이 생활 습관 피드백까지 해줘 전문성을 높였다.
2022년 11월부터 누적 1만명의 사용자가 글루코핏을 이용했다. 이용자의 75% 이상이 체중 감량 등 건강 관리에 관심이 있는 3040층이다. 스마트폰과 근거리무선통신(NFC) 태깅을 통해 기록된 혈당 데이터는 2000만건이 넘었고 이용자들이 기록한 식단 데이터는 30만건에 이른다. 지난해 매출은 5억5000만원이었으며 최근 3개월간 월 매출의 경우 매달 2배씩 성장하고 있다.
양 대표는 지난해 말 SBS 스페셜 '육체실험'에도 출연해 같은 음식을 섭취해도 개인별로 혈당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혈당 기반 다이어트'의 메커니즘을 설명해 반향을 일으켰다. 이승건 토스 대표, 권도균 프라이머(스타트업 투자사) 대표도 글루코핏을 사용해봤다고 밝혀 화제 된 바 있다.
현재 랜식은 6개의 특허를 출원해 등록을 진행하고 있다. 그중 경쟁 서비스 대비 차별성이 있는 부분은 '혈당 예측'이다. 서비스 정확도를 위해 초기 몇개월간 CGM을 부착하면서 글루코핏을 사용하면 나중에는 CGM 없이도 혈당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다. 2주 혈당 측정에 8만원가량이 드는 CGM의 비용적 측면을 고려해 개발한 기능이다.
지난해 12월 12억5000만원 규모의 시리즈A(벤처기업 사업화 단계)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6월까지 블루투스형 CGM과의 연동 작업을 마쳐 이용자의 사용성을 높일 계획이다. 상반기 내 식단 사진을 촬영하면 자동으로 음식이 기록되는 'AI 음식 기록' 기능도 추가할 예정이다.
혈당 관리 시장이 커지면서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지면서 서비스의 정확도, 근거 수준에 대한 잣대도 더 엄격해졌다. 이에 양 대표는 "이용자의 73%가 서비스 이용 1개월 내 3kg가량 감량했다"며 "앞으로 병·의원과의 협업을 통해 근거 수준을 더욱 높이고, 이를 기반으로 B2B 시장까지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끝으로 양 대표는 다시 돌아가도 병원 대신 창업을 택할 거라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전·세계 대사 질환자가 10억명입니다. 쉬지 않고 평생 진료한다고 해도 모든 환자를 만날 순 없잖아요. 서비스 제대로 개발해서, 임상 의료 행위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겠습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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