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다. 집을 새로 짓고 우물을 파서 수도 펌프를 설치한 아버지는 큰집에도 우물을 파겠다고 했다. 반대하는 큰아버지와 며칠 승강이를 벌였으나 강하게 설득한 아버지가 이겨 펌프를 놓기로 했다. 인부들을 동원해 큰집 뒤꼍 구석진 곳에 땅을 파 내려갔다. 동네에 처음 펌프를 놓는 거라 사람들은 매일 구경 오고, 수군댔다. 며칠을 팠으나 물이 나오지 않아서였다. 큰아버지와 심하게 다툰 아버지는 인부들을 철수시키고 공사를 중단했다. 큰집에 머물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며칠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새벽에 아버지가 깨워 따라나서라고 했다. 해뜨기 전 어둑한 길을 자전거 탄 아버지 뒤를 따라 뛰고 걸어 큰댁이 내려다보이는 마을 뒷산에 올랐다. 산 중턱쯤 올라가 바위에 걸터앉은 아버지는 지팡이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혼잣말을 했다. 담배 한 갑을 다 피우고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내달리는 아버지를 따라잡기 어려웠다. 큰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대문을 나서는 큰아버지 등에 대고 “형님, 그렇게 합니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뒤늦게 온 나에게 우물 파는 일꾼들을 불러오라고 했다.
공사를 재개하기 전 아버지는 인부들에게 “물은 틀림없이 나온다”고 장담하며 “밤나무가 서 있는 쪽으로 조금만 더 깊게 파라”고 땅속 물길을 들여다본 듯 자신 있게 주문했다. 공사를 다시 한다는 소문은 빨리도 퍼져서 뒤뜰엔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다들 한마디씩 했다. 둘씩 교대로 밑으로 내려가 흙을 파 올리는 공사는 더뎠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아버지가 “좀 더 힘내라”라는 큰소리로 막았다. 물은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 터졌다. 아래서 “사람 살리라”라는 외마디 소리가 들리며 인부 둘이 물에 흠씬 젖은 채 끌려 올라오자 아버지가 껴안으며 탄성을 내질렀다. 사람 키를 훌쩍 넘게 우물에 물이 고였다. 기대 이상으로 수량이 풍부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새로 집을 또 지었다. 그때 우물을 팔 때는 깊이 파지 않았는데도 물이 쉽게 나왔다. 물이 솟아오른 그 날 밤에 아버지가 큰댁에 펌프 놓던 일을 떠올리며 해준 말씀이 “막히면 원점으로 돌아가라”였다. 땅을 깊이 팠는데도 물이 안 나오자 크게 당황했다고 회상한 아버지는 특히 동네 사람들의 비웃음이 예상 못 한 걸림돌이었다고 했다. 며칠 고심 끝에 “널 데리고 새벽에 뒷산에 올라가 원점에서 계획을 면밀하게 재검토했다”라고 했다. “수맥의 흐름을 읽어 우물을 팔 위치를 점찍고, 파 내려간 깊이를 다시 계산해 허점을 짚어봤다”라면서 “계획했던 데서 소홀히 한 점이 없어 ‘물이 나온다’는 확신을 얻어 공사 재개 의지를 다졌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란 쉽지 않다. 중단한 일을 다시 하는 일 또한 처음 할 때보다 더 어렵다”라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무언가를 이루려는 마음이 ‘의지(意志)’다. 의지는 확신에서 나온다”라며 해자(解字)해가며 설명했다. ‘소리 음(音)’ 자와 ‘마음 심(心)’ 자가 결합한 ‘뜻 의(意)’ 자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생각은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라는 의미다. ‘뜻 지(志)’ 자는 본디 ‘갈지(之)’와 ‘마음 심(心)’이 결합해 ‘가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자기 뜻을 실천한다는 의지를 표현한 말이라고 새겼다. 아버지는 “ 내가 마음먹기에 달린 거다. 일의 성패는 결국 자기와의 싸움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에 내 할아버지에게 배웠다며 고사성어 ‘불천물연(不泉勿捐)’을 일러줬다. 원문은 ‘아홉 길을 팠는데도 샘이 솟지 않는다고 그만두지 말라[堀至九? 不泉勿捐]’이다. 고려 시대 학자 이곡(李穀, 1298~1351)이 쓴 글에서 유래했다. 그는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한 고려인이다. 가전체(假傳?) 소설 『죽부인』을 썼다. 찬성사 이자성(李自成)의 아들이고 이색(李穡)의 아버지다. 영암사에서 우물을 포기하지 않고 백 척을 파서 샘물이 솟아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이곡이 감동해 우물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권면(勸勉)하고자 우물 벽에다 쓴 명(銘), ‘영암사신정명(靈巖寺新井銘)’에 나온다. 찾아보니 영암사는 지금 북경 인근 북차영(北車營)의 적곡산(積谷山)에 있는 절이다. 아버지는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2년이나 파 내려가서야 물이 솟았다고 한다. 1인(?)이 7∼8자, 약 2.1∼2.4m다. 9인(?)이면 약 18.9∼21.6m, 즉 20m 정도의 길이다. 땅파기를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을 길이다”라고 자세히 설명했다. 늘 곁에 두는 부채에 저 성어를 써두고 아버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인용해 기억이 새롭다.
아버지는 “계획한 일을 추진하다 보면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힘들고 지치는 상황이 있게 마련이다. 특히 주위의 시선과 저항이 큰 훼방꾼이다. 그때 실망이 쌓이고 자신감은 줄어만 간다”라고 했다. 이어 “계획이 잘못되어 실패하는 것보다 밀고 나가는 의지가 떨어져 실패한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이제껏 내가 깨우친 방식이다. 주저앉지 않고 난관을 뚫고 나갈 유일한 방법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시간이 익으면 허점이 보인다”라며 마음 깊이 새기기를 당부했다. 쉽게 얻을 일 처리 방식은 아니지만, 손주들에게 꼭 물려주고 싶은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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