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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100명의 시선집이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됐다. 한국 현대시 12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시선집의 제목은 <한국 현대시인선집(Anthologie des potes corens contemporains)>이다.
여기에는 한용운 정지용 김소월 백석 윤동주 등 국권 상실기의 시인부터 박목월 구상 김춘수 김수영 김남조 등 전후 시인들, 허영자 이근배 김종해 이건청 오세영 신달자 문정희 최동호 윤석산 나태주 유자효 정호승 기형도 등 산업화 이후 시인들이 망라돼 있다. 시조시인도 10명 포함돼 있다. 문학평론가인 유성호 한양대 교수의 해설까지 실어 한국 현대시의 지층을 폭넓게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시선집은 당초 2000부 인쇄할 예정이었지만, 수요가 예상외로 많아 발간 부수를 2300부로 늘렸다. 먼저 프랑스 주요 대학과 공공도서관, 프랑스어권 20여 개국 학교에 1000부가 전달됐다. 또 파리와 마르세유, 리옹, 보르도 등 한국 관련 학과나 강좌가 개설된 8개 대학에 수업 자료와 도서관 비치용으로 제공됐다. 한국어를 외국어 과목으로 채택한 25개 고교와 대사관, 문화원, 유네스코 대표부 등에도 배포됐다.
이 중에는 프랑스에서 30년 전 결성된 한국 출신 입양인 단체 ‘한국의 뿌리(Racine corenne)’ 회원 300여 명도 포함돼 있다. 프랑스는 6·25전쟁 이후 미국 다음으로 많은 1만4000여 명의 한국 입양아를 받았다. 시선집을 펼쳐본 회원들은 “고국의 아름다운 시향(詩香)에 눈시울이 붉어진다”며 감격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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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선집은 ‘세계 시의 날’(3월 21일)과 프랑스 최대 문학축제 ‘시인들의 봄’을 앞두고 프랑스시인협회가 직접 발간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프랑스시인협회는 노벨문학상 최초 수상자인 쉴리 프뤼돔 등 3명의 프랑스아카데미 회원이 중심이 돼 1902년 창설한 최고(最古)의 시인단체다. 폴 발레리와 장 콕도, 생텍쥐페리 등 쟁쟁한 시인이 모두 회원으로 활동했다. 20여 개국의 프랑스어권 작가협회와도 다양하게 협업하므로 영향력이 아주 크다.
프랑스시인협회가 한국 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이면에는 한국시인협회와 양국 시인·평론가들의 남다른 노력이 숨어 있다. 한국시인협회는 지난해 3월 21일 파리 소재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양측 시인 60여 명과 최재철 대사 등 국내외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와 함께하는 한·불 우정의 밤’ 행사를 공동 개최하고 프랑스시인협회와 상호 협력을 약속했다.
장 샤를 도르주 프랑스시인협회장은 “한국의 명시들을 보고 양국이 수천㎞ 떨어져 있어 지리적 환경은 다르지만 연령을 초월해 관심사와 감정, 감동의 상호 유사성이 많음을 알게 됐다”며 “프랑스는 독일에 의해, 한국은 일본에 의해 외세 강점기를 경험했는데 양국 시인들이 침략에 저항하는 작품 활동을 활발히 했다는 공통점까지 있어 더 각별하다”고 말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은 “시인단체 차원에서는 한·불 수교 137년 만에 처음으로 2023년 3월 양국 시인협회의 교류가 시작된 이후 지난 1년 동안 적극적으로 교류한 활동의 결과물이자 앞으로 더 큰 걸음을 내딛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더욱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불문학 전공에 파리 특파원을 지낸 유 회장은 오래전부터 양국 시문학 교류를 준비해 왔다.
시선집은 매년 5월 파리에서 열리는 ‘시의 시장’ 전시회 등에 선보일 예정이다. 또 파리에 있는 대형 출판사에서 한국어-프랑스어 대역본 출판을 검토하고 있어 프랑스 일반 독자들에게 한국의 명시를 알리는 통로가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유자효 최동호 시인의 프랑스어판 시집도 곧 출간된다. K팝과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 열풍이 소리예술과 영상예술, 활자예술의 결합으로 한층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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