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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런데 우리는 이들과 함께 살 준비가 돼 있는가. 한국이 급속히 다민족 국가로 변하며 불거진 사건은 한둘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이 정착을 요청했으나 반대 움직임이 일었고, 중국 동포들의 건강보험 ‘먹튀’와 지방선거 투표권 행사가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반면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철수 작전 때 같이 온 난민 390명에겐 호의가 넘쳤다. 한국인이 이주민을 대하는 태도에는 자신감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다민족 국가의 시민으로 살아갈 조건은 딱 하나다. 니체가 <권력에의 의지>에서 강조한 예수의 말, “이방인과 토착민, 외국인과 동포를 구별하지 마라”다. 차별 금지의 원칙이다.
포용적 태도는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수다. 멸시는 우월한 자가 약한 자를 내려보는 시선이다. 경제적 우위는 멸시의 가장 흔한 기준이다. 동남아 출신 노동자에게 쏟아지는 야멸찬 눈길은 미국인이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언제부터 우리가 잘살았다고 그리 거만하게 구는가.
차별 없는 대우가 계층 상승의 동기를 일으킨다는 것은 사회 발전 역사가 증명한다. 외국인의 참정권은 그래서 중요하다. 요건을 갖췄다면 투표권 제공은 당연하다. 건강보험 혜택도 마찬가지다.
법치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은 세계에서 치안 좋기로 유명하지만 영화 ‘범죄도시’가 나올 정도로 외국인 집단거주 지역에선 불안이 상존한다. 폭력이 활개 치지 못하도록 공권력이 구석구석 미쳐야 한다. 불안한 곳에선 누구도 뿌리내리지 못한다.
종교와 음식, 문화의 다름이 함께 못 살 이유는 아니다. 폭력을 부르지 않는 한 디아스포라는 자유와 입맞춤한다.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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