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로고 옷을 입는 트렌드를 두고 이 같은 게시글이 올라왔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CNN, BBC, 디스커버리 등 옷과 상관없는 해외 TV 채널 브랜드 로고가 외국인들 눈엔 자칫 우스워 보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CNN 직원복을 입고 다니는 줄 알겠다”라거나 “KBS, MBC 옷도 나오겠다” 같은 자조 섞인 반응이 이어졌다.
“남들 따라 유행을 좇지만, 또 남들이 다 입는 건 싫다”는 건 패션 기업 입장에선 불가피한 딜레마다. 소비자 심리가 빠르게 트렌드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 군중심리로 패션이 유행하지만 지나치게 대중화하는 순간 인기가 떨어지기도 한다. 특히 무언가 ‘뜬다’ 싶으면 어디서나 그 아이템을 낭비하다시피 모방하는 국내 패션업계 행태가 이런 현상을 극대화한다. 급격하게 쏠림 현상을 만들었다가 극에 달하면 거품이 확 꺼지는 식이다. 노출이 잦아지고 신드롬을 희화화하는 단계에 접어들면 유행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지난 27일 한국경제신문 보도(A1, 3면)에 따르면 MLB의 작년 4분기 국내 매출은 66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했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3~4% 소폭 성장했지만, 3분기에 이어 4분기까지 하반기 들어선 연속 10% 이상 ‘역성장’으로 꺾였다. MLB는 F&F가 1997년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들여온 브랜드다. 비(非)패션 라이선스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2021년 연 매출 1조원을 넘기며 ‘대박 신화’를 썼다. 하지만 정점을 찍은 이 브랜드는 이후 중국 관광객들이 씀씀이를 줄이면서 매출이 줄어들었다. F&F의 디스커버리도 2012년 출시 후 처음으로 지난해 매출이 감소했다.
더네이쳐홀딩스의 내셔널지오그래픽(성인복 기준)은 작년 실적이 급락했다. 2022년 매출 증가율이 22%에 달했지만 작년엔 도리어 2% 감소했다. 이 때문에 더네이쳐홀딩스의 영업이익은 2022년 907억원에서 작년 657억원으로 27% 급감했다.
그 이후엔 ‘김밥 패딩’이 또 한 차례 유행했다. 발목까지 닿는 긴 기장의 검정 패딩 스타일이 마치 김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이 같이 이름 붙었다. 롱패딩의 원래 이름은 ‘벤치 파카’로 운동선수들이 벤치에서 입는 방한복이다. 새로운 청소년 ‘겨울 교복’으로 유행을 타다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품절 대란’을 빚었다. 비슷한 디자인 제품이 우르르 쏟아지면서 1년 만에 수요가 급감, 이듬해 주요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역성장 했다. ‘헐값’에도 안 팔려 현금 확보가 다급한 중소 브랜드들은 신상품 재고를 아웃렛에 넘길 정도였다.
아웃도어 패션이 시들해지자 이번엔 골프웨어 패션이 떴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를 계기로 여행 대신 골프 열풍이 불면서였다. SNS에서 2030 세대 골퍼들이 값비싼 골프 위류와 용품을 뽐내는 현상이 유행하면서 골프웨어 시장은 6조원 규모로 커졌다. 2022년 골프웨어 브랜드는 160여개로 늘었는데 그중 약 40%(60여개)가 골프웨어 인기가 시작되던 2021년에 출시됐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엔데믹이 본격화하면서 골프 인구가 급격히 빠져나가자 골프웨어 브랜드의 매출이 일제히 빠지고 문을 닫는 매장이 속출했다. 골프웨어보다 규모가 작긴 하지만 테니스웨어 시장도 유사한 양상이다. 골프웨어가 부진하자 일부 업체는 새로운 시장을 찾아 테니스웨어로 넘어갔으나 이마저도 새 브랜드 론칭이 가속화하자 열풍이 금세 꺼졌다.
글로벌 유명 기업이나 대학 이름을 딴 라이선스 브랜드까지 나왔다. 국내 패션기업 트라이본즈는 미국 중장비 업체 밥캣의 이름을 딴 ‘밥캣 어패럴’을 론칭했다. 패션기업 두진양행도 미국의 무기 제조사 록히드마틴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록히드마틴 어패럴’ 내놨다. 예일, 케임브리지, 컬럼비아 등 영미권 명문대 이름을 딴 브랜드도 있다.
이처럼 패션과 무관한 로고를 단 신생 라이선스 패션 브랜드가 확 늘자 소비자 피로도가 늘었다. 현재 라이선스 브랜드만 6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MZ세대의 유행 주기가 워낙 빠른 데다 시장이 과열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콘셉트가 비슷하고 라이선스만 다른 브랜드가 너무 많아 차별화가 안 된다"며 "오죽하면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유사한 디자인에 로고만 바꿔 단 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지적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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