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로 사회활동을 시작해 배우로 전향하기까지 최송현에게 '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직업적 요소 중 하나였다. 정확하고 깔끔한 발음으로 진행할 때도, 감정을 담은 대사를 내뱉을 때도 카메라 앞에 선 그의 입은 늘 열려 있었다.
하지만 올 초 발간한 에세이 '이제 내려가 볼까요?'에서 최송현은 '말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세계에 관해 적어 내려갔다. 2012년 취미로 시작해 이제는 직업이 된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알게 된 '물밑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 최송현은 "내가 괜찮은지, 앞으로 추진해나갈 에너지가 있는지 계속 확인해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줄이고 나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최근 서울 모처에서 만난 최송현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3년간 소속사 없이 혼자 일하다가 방송인 타일러 라쉬와 줄리안 퀸타르트가 설립한 웨이브엔터테인먼트에 새 둥지를 틀었고, 1년간 공들여 작업한 에세이를 세상에 내놓는 등 여러모로 활력이 넘치는 시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지난해에는 에세이 집필에 전력을 쏟았다고 했다. 최송현은 "작년 1월에 교통사고가 나서 내내 누워서 글을 썼다. 1월에 출판사 계약을 했고, 9월에 초고를 마감했고, 이후로 수정 작업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책이 나왔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최송현은 2012년 스쿠버다이빙에 입문해 3년 후인 2015년 강사 시험에 합격했다. 현재 10년 차 강사인 그가 보유하고 있는 다이빙 관련 자격증은 총 31개, 바다에 들어갔다 나온 횟수는 500로그를 기록 중이다. 2019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대 다이빙 전문강사협회 PADI(Professional Association of Diving Instructors)의 홍보대사가 됐고, 현재 해양경찰 홍보대사로도 활약 중이다.
작은 체구에 어떻게 무거운 장비를 다 둘러메고 바닷속을 유영하는 걸까. 최송현은 "스쿠버다이빙은 시간도 많이 들고, 몸이 고생스러울 때도 있지만 한 단계씩 발전하는 느낌이 있다"고 했다. 이어 입문 당시를 떠올리며 "소소하게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필요했던 것 같다. 촬영하고 바쁠 때 오히려 시간을 내서 연습했다. 스쿠버다이빙은 내게 고마운 존재"라고 말했다.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한껏 위축돼 있던 자신의 자존감을 북돋워 준 게 바로 스쿠버다이빙이었다는 설명이었다. 책에서는 다이빙 경험과 최송현의 인생·사랑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함께 흐른다. 누군가의 과거와 현재를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딱 잘라 분리할 수 없듯이 어두운 바닷속을 사랑하게 된 그녀의 서사 역시 결코 단편적이지 않았다.
최송현은 "책을 쓰면서 목놓아 운 적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2006년 KBS에 입사해 당시 노현정의 뒤를 이어 인기 프로그램 '상상플러스' MC 자리까지 꿰찼지만 그는 과거 자신을 "늘 눈치 보고, 주눅 들어 있는 겁먹은 신입사원"이라고 표현했다. 결국 입사 13개월 만에 사직서를 낸 최송현을 향해 "결혼하냐?", "성공하니 떠난다" 등의 원색적인 말들이 돌아오기도 했다. 그때 최송현은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을 택한 걸 살짝 후회했다"고 했다.
배우의 길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주연으로 들어간 일일드라마에서 돌연 단역이 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 시절 만난 게 바로 스쿠버다이빙이었다. 최송현은 "멋진 선배님들이랑 연기하는데 단역이면 어떠냐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주변에서 날 너무 안타까워하더라. 올림픽으로 방송이 3주간 결방되면서 일주일간 휴가가 생겼다. 동료가 스쿠버다이빙을 추천했던 게 생각나서 무작정 배웠다"고 말했다.
"한 작품 하고 나면 다음에는 더 돋보이는 역할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요. 그럴 경우에 상처받고 절망하곤 했는데 '좀 쉬면 어때. 주변에 소소한 행복이 많지 않냐'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절망한 시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어요."
책에는 물속에서 얻은 수많은 깨달음이 차곡차곡 적혀 있다. 바다에서 서로의 목숨을 지켜주는 파트너 '버디', 자연의 위대함과 해양 생물의 움직임이 주는 경이로움, 그리고 나 자신에 집중하고 돌보는 색다른 경험이 주는 가치 등이다.
최송현은 "물속에서 호흡기를 채우면 말을 못 하게 된다. 말하는 기능을 닫으면 다른 기능이 활성화되는 느낌"이라면서 "물속에서는 내 숨소리가 들리고, 숨 쉬는 게 버블로 보인다. 평소 타인한테는 관대하고 잘하려고 하면서 자신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세우려고 하지 않느냐.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 생긴다는 게 너무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강사가 되고 보니 다이빙의 모토는 즐겁게 하는 것이더라. 학생이 실수해도 일단 칭찬부터 한 뒤에 부족한 것을 잡아준다"면서 "나도 처음 배울 때 칭찬을 듣고 감격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강사로서 꼭 지키려는 본인만의 규칙이 있는지 묻자 "동시에 3명 이상은 보지 않으려고 한다. 초보자는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장비가 많고 무거워서 파워풀한 익스트림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경쟁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엄청 고요하다. 유유히 가면서 예쁜 걸 구경하는 거라 여유와 힐링을 바라는 사람들한테 잘 어울리는 스포츠"라고 덧붙였다.
책에는 최송현이 직접 찍은 바닷속 모습도 생생하게 담겨있다. 필리핀 보홀의 발리카삭, 팔라우, 하와이 빅아일랜드 등 다양한 장소에서 만난 아름다운 바닷속 세상과 숨 막힐 듯 경이로운 생물들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사진들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프렌치폴리네시아 모레아섬에서 혹등고래를 만났을 때를 꼽았다. 최송현은 "크기가 아파트 6층 높이인 16.8m였다. 내 앞에 아파트 한 채가 쿵 떨어진 느낌이더라. 이렇게 큰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걸 처음 보지 않았냐. 순간 공포가 확 왔는데 그건 잠시였다"고 말했다.
이어 "엄마랑 새끼 고래랑 생물학적으로는 아빠가 아닌데 쫓아다니는 수컷이 있다. 그렇게 한 쌍을 보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는데 봐서 좋았다. 혹등고래에게 난 먼지같이 작은 존재일 텐데 아주 잠시 내가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꼭 다시 보고 싶다"고 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얻은 또 하나는 '사랑'이다. 2019년 수중 촬영 대회에 참가했다가 인연을 만나 결혼 결실을 맺었다. 최송현은 남편 이재한 씨에 대해 "오빠는 실력이 '넘사벽'"이라면서 "남편이 생기니까 엄마도 안심된다고 하더라. 우리의 소원은 100살까지 다이빙하는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최송현은 수줍게 명함을 건넸다. 나침반 N, E, W, S에 맞춰 자신을 표현한 명함이었다. 언더워터 필름 메이커(u'N'derwater film maker), 엔터테이너('E'ntertainer), 스쿠버다이빙 강사('S'cubadiving instructor) 그리고 이번에 새로 추가된 작가('W'riter)라는 직업이 새겨져 있었다.
"한 독자가 너무 답답해서 숨이 안 쉬어졌는데 제 글을 보고 숨이 쉬어졌다는 서평을 남겼더라고요. 눈물이 흘렀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하는데 제 글로 삶에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감사했죠. 삶의 쉼이 필요한 분들께 용기와 힐링이 되길 바랍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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