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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얼마나 건강한가’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정 기능이 있는가’는 자유시장경제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역사는 수많은 사례를 통해 시장이 결코 건강할 수 없음을 확인시켜줬다. 최근 영국에서 출간돼 화제를 모은 <벌처 캐피털리즘(Vulture Capitalism)>은 제목에서부터 섬뜩함이 느껴진다.
벌처는 썩은 고기만 먹고 사는 독수리를 의미하는 단어다. 기업 구조조정이나 부실자산 매각 등으로 수익을 올리는 펀드를 가리켜 ‘벌처 펀드’라고 부르는데, 벌처 캐피털리즘이란 제목만으로 책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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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쓴 그레이스 블레이클리는 1993년생으로 최근 영국에서 주목받는 좌파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다. 청년 세대가 세운 대안 언론 노바라미디어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는 계간 트리뷴에서 활동 중이며 <금융 도둑>과 <코로나 크래시>에 이어 이번 <벌처 캐피털리즘>에 이르기까지 현대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하는 책을 잇달아 펴냈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해 당신이 아는 모든 것은 잘못됐다”며 “자유시장은 실제로 자유롭지 않다”고 고발한다. 경제학 이론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세상은 그리 공정하게 돌아가지 않고 기업 이익은 모든 사람에게 배분되지 않는다. 선택의 자유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실행되고 있다.
저자는 JP모간, 보잉, 포드 등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기업 사례를 소개하며 최근 문제가 되는 여러 위기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이 다름 아닌 ‘자본주의 자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가 고장 난 게 아니라 원래부터 구조적 결함이 많은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재분배’라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거라 기대하지만 사실상 재분배를 계획하고 주도하는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쥔 사람이다. 빈 병에 소변을 봐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아마존 근로자처럼 보통 사람들의 자유는 줄어들고 있다. 반면 기업의 힘은 점점 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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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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