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글로벌 투자업계 인사와 함께 방한한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 관계자들이 국내 정부·학계 인사들에게 쏟아낸 질문이다. 아시아 기업 지배구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설립된 ACGA는 글로벌 연기금, 국부펀드, 자산운용사, 투자은행(IB), 회계법인 등 100여 개사가 모인 비영리 단체다. 이 단체가 발표하는 기업 지배구조 발전 순위는 각국 기업 환경과 투명성에 대한 주요 지표로 쓰인다.
올해 ACGA 방한은 예년에 비해 특별했다. ACGA만이 아니라 노르웨이연기금, 골드만삭스, JP모간 등의 임원급 관계자가 함께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자본시장연구원 등 밸류업 프로그램 유관 부처 및 기관을 두루 찾아 대화했다. “투자자들이 밸류업 프로그램의 지속성 등을 두고 시나리오 서너 개를 만들어 한국의 방침을 떠보는 것 같았다”는 게 한 논의 참석자의 전언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가 주로 묻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정책 지속성과 기업의 참여도다. 일단 짧게는 22대 총선 이후, 길게는 윤석열 대통령 임기 이후에도 정책 강도가 계속될 것인지를 우려하고 있다.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인지도 걱정한다. 자본시장의 진짜 체질 개선은 자발적인 장기전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게 이들이 주장하는 요지다.
밸류업 ‘원조’ 격인 일본이 그렇다. 최근 일본 증시 상승세의 바탕은 한두 해 동안 이뤄진 게 아니다. 일본 당국은 2019년부터 자본시장 재편 논의에 나섰다. 2022년 3시장제 개편을 완료했고, 2026년엔 강화한 상장 요건을 적용한다. 지난해에는 각 기업이 자발적으로 가치 제고안을 공개하도록 하는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일본공적연금(GPIF)은 지난 10년간 자국 내 주식 비중을 전체 투자액의 17%에서 25%로 늘렸다. 증시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발판을 장기간 쌓아 왔다는 얘기다.
이 같은 노력은 ACGA 순위에서도 결과로 나타났다. 작년 12월 일본은 호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8위였다. 일본은 ACGA가 2018년부터 총 세 차례에 걸쳐 순위 집계를 할 때마다 두세 계단씩 올랐다. 같은 기간 한국은 매번 8~9위를 맴돌고 있다.
정부와 유관기관들은 이르면 내년 말 있을 ACGA의 다음번 순위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장 선진화를 목표로 각종 방안을 내놨는데도 순위가 제자리걸음을 한다면 보통 망신이 아니라서다. 한국이 의미 있는 도약을 이룰 수 있을지는 정부와 기업, 투자자들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 제대로 된 ‘자발적 장기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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