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의류 전자상거래(e커머스) 스타트업 링크샵스. 154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넥스트 유니콘 기업’으로 거론된 업체지만 지난달 폐업했다. ‘광저우 커머스’로 불리는 중국 패션 플랫폼의 초저가 공세를 버텨내지 못했다. 회사 측은 사업이 급격히 기운 탓에 새로운 투자 유치도, 기업 매각도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2년 전과 비교하면 낙폭은 더 크다. 2021년 10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e커머스 시리즈A 투자액은 2913억원이었다. 최근 6개월 투자액의 10배 수준이다. 이때는 투자 건수도 30건에 달했다.
‘벤처투자의 꽃’이라고 불리는 시리즈A 투자는 사업화에 나선 스타트업이 20억~50억원가량의 자금을 유치하는 단계다. 벤처투자업계가 해당 업종의 성장 잠재력을 얼마나 높게 보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역할을 한다. e커머스 투자가 급감한 것은 이 시장의 전망을 좋게 보는 벤처캐피털(VC)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반대로 최근 6개월간 인공지능(AI) 분야 시리즈A 투자는 1072억원(18건)으로 전년 동기의 630억원(14건)보다 80%가량 늘었다. AI 전환(AX) 트렌드에 힘입은 제조업 분야 투자도 같은 기간 1743억원에서 2158억원으로 증가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몇 년 전 커머스 플랫폼에 몰린 돈이 AI와 딥테크 쪽으로 옮겨온 것”이라며 “지금 e커머스 초기 투자는 사실상 멸종한 수준”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e커머스 시장이 ‘레드오션’이 됐다고 설명한다. 쿠팡, G마켓 등 종합 커머스 플랫폼이 자리 잡고 있는 데다 컬리 에이블리 등 버티컬 스타트업도 적지 않아 신규 스타트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알테쉬’(알리·테무·쉬인)로 불리는 중국 e커머스의 공습으로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 한 VC 심사역은 “드론으로 배송하는 수준의 혁신적인 사업 모델이 나오지 않는 이상 K커머스에 신규 진입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의 신규 진입이 사실상 막히면서 국내 e커머스가 기술과 서비스 경쟁이 아니라 가격 경쟁의 늪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컬리의 새벽배송, 에이블리의 AI 상품 추천처럼 스타트업들이 먼저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으며 시장 혁신을 이끌어온 때와는 상황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아직 시장에 남아있는 e커머스 스타트업은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활로를 모색 중이다. 국내 시장에서 제살깎기 경쟁을 하는 것보다 새로운 시장을 뚫는 게 낫다고 본 것이다. 최근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한 노태그샵(동남아시아 패션 커머스), 고투조이(베트남 호텔 예약 서비스), 마카롱(인도 뷰티 커머스) 등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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