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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공이 직접 차를 몰다가 충돌 사고를 냈다. 여왕의 남편이 이틀 새 두 차례나 교통사고를 내 상대 차 탑승자가 다치자 영국 사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당시 필립공의 나이는 98세. 상황은 필립공이 사과 성명을 내고 운전면허를 포기하며 수습됐다. 한국에서도 고령자 운전에 의한 사고가 늘고 있다. 택시업계에서는 40%가량이 노인의 기준인 65세 이상일 정도로 연령대가 올라갔다. 적지 않은 인명 피해를 포함한 고령자 운전사고가 늘어나면서 노인 운전을 규제하고 면허증을 반납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해외에서도 노인 면허에 신중을 기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면허증을 포기하는 고령자 비율은 아직 낮은 수준이다. 고령사회의 노인 운전면허, 적극적으로 제한해야 하나.
나이 들면 감각과 지각 능력이 떨어지거나 운동신경이 약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자동차 운전을 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자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음주운전에 대해 전 세계 대다수 나라가 경각심을 갖고 엄정한 대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술에 취하면 그만큼 상황판단이 늦어지고 반응도 느려지는 등 운전에 부적합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타인의 피해는 인명을 앗아갈 정도다. 심신이 모두 약해지는 고령자의 운전이 그런 상황과 다르지 않다.
일본은 한국보다 20년 앞서 노인의 운전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해왔다. 반납 시 은행 금리 우대, 백화점 물품 무료 배송, 택시비 할인 같은 인센티브를 내세웠다. 80세면 면허 자동 말소(뉴질랜드), 운전 능력 평가를 거쳐 속도와 운행 거리를 제한하는 등의 조건부 면허제(미국·독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설령 노인 운전사고 비율이 약간 더 높다고 해도 본인이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면허 반납이나 중지를 강제할 수단은 없다. 어떤 공인 면허증에 대해 나이를 기준으로 효력 중지를 하나. 의사·변호사·세무사·공인중개사 등 국가가 발급하는 면허증은 모두 나이와 관계없이 유효하다. 면허증만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고 합리성도 없다. 더구나 자동차는 현대사회의 생활필수품이다. 대도시와 달리 대중교통이 잘 갖춰지지 않은 지역의 고령 거주자들이 자동차를 이용하지 못하면 불편함이 커진다.
흔히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나이에 따른 차별은 어떤 경우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요즘은 의료·보건·영양이 전반적으로 좋아지면서 60~70대 정도는 노인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80대에도 건강하고 판단력도 좋은 건강한 사람이 많다. 배타할 대상이 아니라 이들이 가진 경험과 지식을 배우고 활용해야 한다. 택시 기사 가운데 고령자도 많지만 그들 또한 어엿한 사회인이고 직업인이다. 적은 소득 때문에 젊은 층이 기피하고 있어 고령 기사를 배제하면 택시업계가 제대로 가동되지도 않는다. 노인 운전을 배제하려면 대중교통망을 보강해야 하고 고령자의 이동도 보장해야 한다. 면허증 포기에 대한 인센티브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게 할 예산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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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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