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금융가를 강타한 홍콩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폭락 사태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판매은행들이 손실 배상 절차를 시작했지만 배상 비율을 놓고 벌이는 줄다리기는 여전하다. 수익 상품 판매를 둘러싼 분쟁은 2008년 키코(KIKO) 사태, 2020년 라임·옵티머스 사건 등과도 닮은꼴임을 돌아보게 한다. 당시 상황을 전한 기사 한 대목이 이를 잘 보여준다. “잇따른 사모펀드 환매 사태로 100% 배상에 해당 은행 경영진은 중징계를 받았다. 이후 ‘신뢰’를 먹고사는 은행들은 치명타를 입었다. 벨기에나 노르웨이처럼 수익 구조가 복잡해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있는 금융상품은 개인투자자에게 판매를 금지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과(와)’는 격조사와 접속조사 두 가지 쓰임새가 있다. 격조사일 때는 ‘A와 ~하다’ 형태를 취한다. 이때 ‘-와’는 뒤에 오는 서술어를 꾸며주는 부사격조사다. 둘째, 접속조사일 때는 둘 이상의 사물이나 사람을 같은 자격으로 이어주는 기능을 한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같은 게 전형적인 쓰임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두 번째 용법이다. 이를 자칫 “우리는 자유나 평등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오류가 생길까? 두 말의 용법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접속조사다. 그런데 용법은 ‘-과(와)’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둘 이상의 사물을 같은 자격으로 이어준다’는 점은 같다. 그래서 ‘-과(와)’와 ‘-나’를 ‘등위접속어’라고도 한다. 앞뒤에 오는 말이 같은 자격, 즉 명사면 명사끼리, 동사면 동사끼리, 구면 구끼리, 절이면 절끼리 어울린다는 뜻이다. 당연히 둘 중 하나가 이런 동급의 자격을 벗어나면 비문이 된다.
그런데 ‘-나’는 ‘-과(와)’와 달리 의미상 나열되는 사물 중 하나만 선택됨을 나타낸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자유와 평등’이라고 하면 둘 다 아우르는 것을 의미하는 데 비해, ‘자유나 평등’이라고 하면 둘 중 하나만 나타내는 것이다. ‘-과(와)’는 영어의 ‘and’에 해당하고, ‘-나’는 ‘or’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구별하고 보면 누구나 아는 내용인데, 이걸 문장 속에서 다루다 보면 헷갈리는 것 같다.
다음 문장을 통해서도 이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캘퍼스)과 일본(GPIF) 캐나다(CPPIB)는 한국의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해당하는 의사결정기구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위원장은 기업과 학계 출신 전문가가 맡고 있다.” 여기서 ‘기업과 학계 출신 전문가’는 온당한 표현일까? 의미상 우리는 위원장이 기업 출신이거나 학계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기업 and 학계’를 뜻하는 ‘기업과 학계’ 출신이 틀린 표현이란 것이 드러난다. ‘기업이나 학계’ 출신이라고 해야 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의미 용법의 미세한 차이를 느껴야 한다. 문법에 맞게 쓸 때 글이 자연스러워지고 세련미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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