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찾은 프랑스 파리 동북부의 시골 마을 뷔르. 드문드문 들꽃이 피어있는 드넓은 평야에서 저층 벽돌 건물을 간간이 볼 수 있다.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운영하는 연구동과 사무실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곳 지하 500m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영구처분시설(고준위 방폐장) 시제오를 구축할 계획이다. 방폐장 부지는 축구장 2000개 크기(약 15㎢)에 달한다.
현지에서 만난 다미앵 마우리 타리에 프랑스 방사성폐기물관리청(ANDRA)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프랑스 정부는 고준위 방폐장 구축에 앞서 2004년부터 20년 동안 이곳에 지하연구시설(URL)을 가동하며 안전성을 검증하고 있다”며 “방폐장의 안전성에 대해 주민들이 확신을 갖게 하려면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여론을 형성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하연구시설은 연구동 사무실 지하 약 500m에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굴착기로 지름 10m 크기의 원형 터널을 파들어가며 레이저 광선 등을 활용해 지반 뒤틀림 여부 등을 측정한다. 지진과 홍수 등 기상 이변이 발생하면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새나갈지 여부까지 따져본다. 프랑스 원자력안전청(ASN)이 주기적으로 현장을 찾아 실험 결과를 검증한다.
타리에 담당자는 “과거 원전과 방폐장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뷔르까지 찾아와 폭력 시위도 종종 벌였다”며 “하지만 지하연구시설을 장기간 가동한 후 방폐장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는 거의 사라졌다”고 전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런 검증 결과를 토대로 2027년 뷔르 지역에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핀란드 스웨덴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지어질 방폐장이다.
이런 정부 노력에도 프랑스에선 원전과 방폐장을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는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열어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해 왔다. 국민이 방폐장의 안전성을 체감할 수 있는 방문자센터를 열었고 시제오 프로젝트의 현황을 알리는 월간지도 발간한다.

주민을 위한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프랑스 정부는 2000년 ‘방사성 폐기물 관리계획법’을 제정해 뷔르 주변의 뮈즈와 오토마르누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두 지방자치단체엔 각각 연간 3000만유로(약 440억원)가 지원되고 있다. 오토마르누에서 만난 주민 파트리스 토레스는 “ANDRA는 지난 20년 동안 이곳에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마을의 1000여 개 일자리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뷔르=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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