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일본을 바라보는 대내외 시각은 이랬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보수적인 기업 문화가 혁신을 멈춰 세웠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일본이 180도 달라졌다. 일본 정부는 스타트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정하고 파격적인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글로벌 벤처캐피털(VC)은 돈을 싸 들고 일본으로 향하는 중이다. 아시아 창업 중심지 역할을 두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경쟁이 붙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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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파격 지원책을 내세운 건 지방자치단체뿐만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2027년까지 스타트업에 10조엔(약 90조원)을 쏟아붓고 있다. 일본정책금융공고(JFC)는 이달부터 스타트업 대상 무담보 대출 한도를 2배 넘게 올렸다. 일본 연기금과 민간 은행도 스타트업 투자에 합세했다.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한 ‘혁신 박스 세제’도 새롭게 도입됐다. 이달 이후 취득한 인공지능(AI) 관련 라이선스 소득에 30%의 소득공제를 해주는 제도다.
일본의 ‘각성’에는 스타트업을 키우지 못하면 국가가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란 위기감이 반영됐다. KOTRA 도쿄무역관 관계자는 “인력 부족부터 인프라 노후화, 지역 소멸 등 많은 사회적 과제를 안고 있는 일본은 이를 해결할 솔루션에 목말라 있다”며 “체질 개선을 원하는 민간 기업들도 스타트업과의 접점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한 건 언론에서부터 감지된다. 지난해 일본 스타트업 도산이 약 2700건으로 역대 최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요 언론은 비판 대신 실패를 용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본 최대 경제신문인 니혼게이자이가 “기업 도산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실패를 장려해 끊임없이 새로운 싹을 키워야 한다”고 평가한 게 대표적이다.
안정적인 직업을 떠나 창업하거나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청년도 늘고 있다. 2022년 기준 공무원을 하다가 스타트업으로 옮겨간 직원 수는 전년 대비 4배 늘었다. 도쿄대 학생들의 취업 희망처 조사에서도 공무원 선호도가 큰 폭으로 하락하고 IBM 같은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새롭게 순위에 올랐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대기업 인력도 급증했다. 주요 스타트업 76곳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처음으로 700만엔(약 6230만원)을 돌파했다.
물리적으로 한국과 가까운 데다 그동안 디지털 전환이 더뎠던 것이 기회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현재 일본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 진행도는 48.4%. 미국(78.6%), 중국(88.3%)의 절반 수준이라 기술력을 갖춘 한국 스타트업들이 진입할 여지가 많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가 해외 창업자 대상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강점이다. 오픈AI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IT 인프라 수요를 노리고 일본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창업 분위기가 꺾이는 중이다. 지난해 말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국내 스타트업 재직자 설문에서 창업 고려율은 전년 58.0%에서 47.2%로 하락했다. 대기업 직장인의 스타트업 이직 고려율도 18.8%로 전년보다 6.0%포인트 떨어졌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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