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24일 09:3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수확 가속 법칙(Law of Accelerating Returns)’을 설명하며 “기술이 축적되고 축적된 기술의 진화를 빠르게 하면 기술 진화의 가속도가 붙게 된다”고 언급했다. 지난 우리 인류의 기술 발전 과정을 되짚어 보면, 실제로 기술의 발전은 시대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가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기원전 250만 년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뗀석기를 사용한 이후 인류가 철기를 들기까지는 250만 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 후 총을 만들기까지는 약 3천 년의 시간이 걸렸으며, 약 500년이 지나 1775년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산업혁명이 이루어지면서 인류의 기술 발전의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불과 100년이 지나 인류는 1879년 에디슨이 발명한 전구를 통해 낮과 같은 밤을, 1903년에는 하늘을 나는 라이트 형제를 보았다. 20세기 말에 들자 기술의 발전 가속도는 더욱더 빨라지게 되었다. 1991년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이 등장하며 인터넷 대중화를,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되며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바야흐로 2022년 스스로 학습하고 콘텐츠를 생성하는 인공지능 챗GPT가 세상에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AI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헬스케어 산업에서도 ‘수확 가속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모습이다. AI 기술을 통해 대량의 정형, 비정형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예방, 진단, 치료, 관리 등 의료 서비스 전주기에서 혁신적인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개인별 건강관리 및 의료 서비스를 추천하고, 새로운 치료법 개발을 촉진하는 등의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있으며, 예측 모델링을 통한 환자 대기 시간 감소, 협진 활성화, 만성질환에 대한 실시간 원격 모니터링 등의 프로세스 효율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또한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이나 수술 후 합병증 예측 및 환자 별 맞춤 관리 등 기존에 시도하기 어려웠던 신규 제품 및 서비스 개발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마켓앤마켓(MarketsandMarkets)은 2017년 14억 3,300만 달러였던 AI 헬스케어 시장 규모를 2023년 158억 300만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았으며, 2030년 1,817억 9,000만 달러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국내 AI 헬스케어 시장도 2023년 3억 7,700만 달러에서 연평균 50.8% 성장하며 2030년 66억 7,200만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헬스케어 산업이 과도기를 지나 새로운 AI 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고민해 봐야 할 이슈는 크게 3가지다. 첫 번째 이슈는 유연한 의료데이터 연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AI를 접목한 의료데이터 분석은 건강 모니터링, 의료 의사 결정, 진단 개선, 예방 프로그램 등 다양한 목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활용된다. 또 이러한 AI 알고리즘을 개발할 때, 대량의 의료 및 건강 정보를 수집 및 관리, 공유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약 90%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EMR(Electronic Medical Record, 전자의무기록) 시스템 보급률에도 불구하고 환자 중심의 필요한 정보 공유에는 어려움이 있다. 의료에는 상당히 복잡한 내용의 임상 기록이 존재하고, 의료 기관마다 환자의 정보, 증상 등을 산정하거나 입력하는 기준이 다른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AI 헬스케어 데이터의 새로운 한 축인 웨어러블 디바이스, 휴대폰 등 일상생활에서 개인의 디바이스로 수집된 PHR(Personal Health Record, 개인 건강정보)의 경우 다양한 플랫폼에 분산되어 처리되므로, 통합하여 활용하기에 더욱더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의료 기관 간의 데이터 연계뿐만 아니라 EMR-PHR 데이터 연계도 아우르는 상호운용성 전략 수립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둘째는 개인정보의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AI 헬스케어 산업에서 의료데이터 이용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의료데이터 생산-저장-이용 과정에서 민감성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악의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의료데이터를 축적 및 관리하는 조직은 데이터 유출을 막기 위한 암호화 알고리즘 등 데이터 보안 환경을 구현하고, 데이터 거버넌스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보건의료데이터를 공유하는 경우에는 데이터 개방을 요구하는 기관의 활용 목적이 적합한지 확인하고, 실제로 제공되었을 때 활용적정성을 지킬 수 있는지 판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의료데이터는 매우 높은 기밀성을 요구하는 정보임으로, 이러한 정보를 생성형 AI에 연결할 경우 민감한 정보가 누설될 리스크가 있다. 따라서 공유 데이터의 처리 목적, 개인식별 위험도 등을 고려하여 정형데이터의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뿐만 아니라 의료 기관에서 수집 및 처리되는 이미지·영상·텍스트 등 비정형데이터 또한 합리적인 처리 방법 및 수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윤리·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AI 기반의 의료 서비스가 점차 확대되면서 AI 활용에 있어 학습 데이터의 편향성, 의사 결정 과정의 투명성 및 책임 소재, 환자에 대한 안전보장 및 사회적 영향 등 윤리·사회적 문제 또한 함께 주목받고 있다. AI는 인간의 사고 과정과 유사한 자율적 판단을 수행할 수 있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법적 책임 주체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AI가 각종 산업 분야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명확한 윤리 및 도덕적 기준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AI 솔루션 혹은 AI 의료기기 등으로 인한 의료 사고 발생 시 AI 알고리즘 개발자나 AI를 적용한 의료기기 제작자, 혹은 AI의료기기를 사용한 의사나 병원 측에 책임이 있는지 판단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향후 AI 의료 및 헬스케어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우선 AI 알고리즘 개발을 위한 학습 데이터, 발생 가능한 의료사고, 원활한 의료 서비스 보급을 위한 허가 및 보험 제도까지 관련 법규 및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SW 개발자, AI 의료기기 제조업자, 의사, 병원, 환자 등 각 이해관계자의 역할 정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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