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내년 도입이 예정돼 정부가 도입 전 폐지를 추진 중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에 대해 "유예는 비겁한 일"이라며 "폐지하겠다는 정부 입장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개인적 견해를 전제로 "금투세는 국회에서 쟁점화해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금융감독당국 수장이 세제에 대해 직격탄을 날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원장은 25일 서울 여의도동 한국거래소에서 '개인투자자들과 함께하는 열린 토론(2차)'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금투세는 국내 주식·공모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으로 연간 5000만원 초과 양도차익을 거둔 투자자에게 차익의 20~25%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그는 “금투세를 폐지하겠다는 정부 입장엔 변함이 없다”며 "최근 유예 이야기도 나오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보기엔 과하게 말하면 좀 비겁한 결정이 아닌가싶다"고 했다.
이 원장은 정부가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와 체질개선을 목표로 추진 중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본적으로 민생 이슈"라며 금투세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그는 "개인과 기관투자자 모두 금투세 도입이 밸류업과는 정면으로 상충된다는 의견이 많다"며 "지금처럼 밸류업이 주요 현안인 때에는 민생을 위해 어떻게 자본시장을 발전시킬지,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할지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금투세는 과세 수입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크고, 자본시장 유동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며 "이같은 여론을 바탕으로 정부 내에서 의견을 다시 조율하고, 국회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금투세 도입 결정을 한 당시와 지금의 국내 자본시장이 많이 달라졌다고도 지적했다. 이 원장은 "(금투세가) 수년 전엔 나름 근거가 있는 얘기였을지 모르나 지금은 다르다"며 "당시가 석기시대라면 지금은 철기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차원이 달라졌다"고 했다. 일반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가 활발하고 대체 투자 자산이 많아진 와중 금투세를 도입하면 시장 유동성과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원장은 "금투세는 단순 세수 문제가 아니다"라며 "그간엔 부동산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경제 구조의 미래를 자본시장에서 찾을 수 있도록 어떤 방안이 필요한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는 금융당국이나 정부만의 몫이 아니다"며 "22대 국회에서 이 부분에 대해 좀더 전향적으로, 국민들을 위한 민생 정책을 중심으로 한 번 생각해봐주십사 하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이날 개인투자자 토론회 중에도 금투세에 대해서 국회의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토론에 참석한 패널 여러 명이 금투세 도입이 자본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자 이 원장은 "금투세는 제가 얘기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총선 이후에도 정부가 금투세 폐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에둘러 말한 셈이다.
그는 "자본시장 활성화와 붐을 조성할 수 있도록 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이는 올해 한해로 끝낼 문제가 아닌 만큼 긴 호흡으로 어떤 접근을 할지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부 부처분들도 그렇게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다만 금투세는 국회도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국회 구성이 되면 논의할 장이 열릴 것으로 본다"며 “다양한 사안이 산적 중이라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는 만큼) 조금더 쟁점화시킬 필요가 있지 않느냐라는 의견 가진 분들이 많다"고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