兆단위 사기범, 美선 징역 100년…韓선 15년 '남는 장사'

입력 2024-04-28 18:27   수정 2024-10-05 22:59

#1. 서울 강서·관악구 일대에서 임차인 355명에게서 전세 보증금 795억원을 가로챈 ‘세 모녀 전세 사기 사건’ 주범 A씨는 작년 7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2. 서울 강서·양천구 등지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세 사기인 ‘빌라왕 정모씨’ 사건의 배후로 알려진 부동산 컨설팅 업체 대표는 37명에게서 80억원을 빼앗고도 최근 상고심에서 징역 8년을 확정받았다.

최근 몇 년 새 사회문제로 대두된 전세 사기 범죄자에게 내려진 형량은 고작 10~15년에 머문다. 사기죄의 법정 최고형이 15년에 그치는 데다 피해 금액이 수백억원에 달해도 피해자 1명당 피해 금액을 기준으로 죗값을 가늠하는 법 제도 때문이다. ‘사기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사기죄 처벌 규정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는 장사’ 된 사기 범죄
28일 검찰청 범죄분석통계에 따르면 2022년 검거된 사기 범죄자 17만6623명 가운데 재범자는 41.3%(7만2997명)로 나타났다. 재범자 중 45.5%(3만3205명)는 같은 유형의 범죄를 또다시 저지른 동종 재범자다. 동종 재범자 비율은 2019년 39%, 2020년 40.1%, 2021년 42.4% 등으로 증가 추세다.

같은 사기죄를 다시 저지르는 것은 처벌 규정이 그만큼 약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양형 기준에 따르면 일반 사기의 기본 형량 기준은 사기 금액이 1억원 미만일 때 6개월~1년6개월, 1억~5억원일 때 1~4년이다. 사기 금액이 5억~50억원이면 형량 기준은 3~6년, 50억~300억원이면 5~8년이다. 사기 금액 300억원 이상일 때 기본 6~10년에 다수 피해자 등 가중 요소를 반영하면 최장 19.5년이 가능하지만 실제 법정형은 최고 15년으로 제한된다.

현행법상 사기 피해 금액이 5억원 이상일 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을 적용해 사기 금액이 5억원 이상이면 3년 이상 징역을 내리고,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으로 가중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다수 피해자에게 동일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피해자 1명당 피해 금액을 기준으로 특경법 적용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전세 사기 피해자의 보증금 평균 액수가 1억400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특경법을 적용해 강도 높은 처벌은 사실상 어려운 셈이다.

전체 피해 규모가 아무리 커도 피해자 1명당 피해 금액을 기준으로 특경법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다중 사기 범행을 근절하기 위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며 “특경법상 사기 범죄가 지니는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해 피해자가 많으면 양형 가중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절반만 가중’ 경합범 규정도 손봐야
한 사람이 2개 이상 범죄를 저지른 경우 여러 혐의 중 최고 형량의 최대 절반만 가중하도록 한 경합범 규정도 가중 처벌이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예컨대 현행법상 최고 형량이 징역 10년인 사기죄는 범죄를 2개 이상 저질러도 5년을 합산해 법정 최고형은 15년이 된다.

반면 미국 형법은 형량을 합산하는 방식이다. 범죄 건수에 따라 수백 년의 징역형도 선고할 수 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다단계 금융 사기를 벌여 650억달러(약 83조원)의 피해를 준 버나드 메이도프 전 미국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은 2009년 150년을 선고받고 12년 만에 교도소에서 옥사했다.

한상훈 한국형사법학회 회장은 “현행 경합범의 단순 가중 방식으로는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가중 처벌 범위의 상한선을 두고 범죄 건수에 따라 형량을 합산하도록 하는 절충 방식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기 검거율 절반으로 ‘뚝’
수사기관의 수사력 부실도 사기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 경제 범죄에 검찰이 직접 관여할 수 있는 기준을 5억원 이상 고액 사기로 제한한 검경 수사권 조정(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 이후 이런 현상이 뚜렷해졌다. 검찰의 수사 권한이 축소된 데다 판사는 증거자료 범위도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판결을 내려야 해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까지 70%대를 유지해온 사기 범죄 검거율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시행된 2021년 61.4%, 다음해 58.9%로 떨어졌다. 한 검사 출신 정부기관장은 “수사기관의 사기 범죄 수사 역량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퍼질수록 사기 범죄 발생률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경진/박시온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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