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오면, 투명하고 화사한 햇살을 피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 싱그럽고 푸른 날들이 부담스러웠다. 어떤 죽음들이 떠올라서 그랬다. 5월의 빛나던 햇살이 누군가에겐 마지막 순간이었음을 내 양심이 알고 있었으리라.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91년도에는 많은 이들이 권력에 저항하다 죽었다. 충격이었다. 금잔디 광장의 5월 햇살이 아름답다고 느낄 틈도 없이 학생이, 노동자가, 시민이 쓰러져갔다. 80년 5월의 광주가, 87년 5월의 항쟁이 91년의 5월로 이어지고 있었다. 세상이 무서웠다. 조막만한 신념으로 호기를 부리기도 했지만 30년이 넘은 지금도 어디에 꺼내 놓기도 부끄러운 당시 학번의 삶이 되고 말았다. 소설가 한강이 그의 책 '소년이 온다'에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라고 고백했듯이 5월은 많은 이들에게 양심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그래서 5월은 오(悟)월이다. 아프고, 그립고, 시리고, 눈부시고.
이왕이면 광주 가까운 곳으로 국밥기행을 가고 싶었다. 오월을 느껴볼 수도 있고 음식에 관한한 실패가 없는 동네가 그 쪽이다. 담양은 광주 사람들이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 노후에 이사를 오는 곳이다. 도심하고 가깝지만 담양은 자연이 그윽하다. 산이 많고 영산강이 흘러간다. 곳곳에 대나무 숲이 좋고, 아름드리 메타세콰이어가 가지런히 뻗은 길이 신비롭다. 음식도 유명하다. 떡갈비와 불고기, 갈비는 어느 식당을 가도 실망하지 않는다. 담양 국수거리에서 후루룩 한 그릇을 비워도 특별하다. 지나가다 육회비빔밥 간판이 보인다면 무조건 멈춰야 하고, 한정식에는 대나무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이 그득하다. 500년 넘은 선비 정신이 깃든 전통정원 '죽녹원'과 '소쇄원'을 걸어 보는 것도 빠트리면 안된다.
이것저것 둘러보고 먹거리도 많지만 담양은 단연 국밥이 최고다. 담양군 창평면의 창평국밥거리가 유명한데 주말이면 사람들이 북적인다. 그 중에서 창평국밥이 몰려 있는 곳이 아닌 담양군 고서면의 고서창평국밥을 찾았다. 25년이 조금 지났다는 고서창평국밥은 창평국밥거리에서 떨어져 있지만 창평국밥 본연의 맛을 낸다는 소문이 있어서다. 광주의 지인은 고서창평국밥 맛이 더 낫다고 귀띔했다. 창평국밥은 일제 강점기에 도축장이 있던 창평시장 국밥에서 유래했다. 끓는 물에 돼지피와 콩나물, 무를 넣고 고춧가루를 풀어 장 보러 온 서민들이 먹던 음식이었다. 1974년 우시장이 담양으로 옮겨 갔지만 창평과 고서는 지금도 주변 도축장의 신선한 부속고기를 얻기가 용이해 국밥의 전통을 이어간다.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나 도착한 실내는 연세 지긋한 어른들이 많다. "오랜만에 왔더니 맛있네."하며 단골인 듯한 부부 어른이 정겹게 국밥을 드신다. 고서창평국밥은 검색상으로는 고서옛날창평국밥으로 나오는데 식당 어디를 봐도 '옛날'이라는 말은 없다. 이 식당은 곱창과 암뽕순대가 국밥과 전골의 재료로 유명하다. 곱창은 별도 공간에서 매일 신선하게 준비한다. 암뽕순대는 식당 안에서 직접 만든다. 곱창과 암뽕순대를 앞세워 돼지 부속 고기를 다양하게 준비해서 모듬국밥, 순대국밥, 곱창전골을 만든다.
모듬국밥 한 그릇을 주문했다. 맑은 듯한 국물에 순대, 곱창, 부속고기들이 가득하다. 공기밥이 따로 나온다. 국물을 한 숟가락 먹어보면 담백한데 심심하다. 왜 그렇지 하는 순간 국물 사이에 다대기 한 덩어리가 보인다. 숟가락으로 고루 저었더니 맑았던 국물은 불그스름하게 얼큰해졌다. 그제서야 국밥 다웠다. 사람마다 간을 다르게 할 수 있게 배려한 모양이다. 다대기를 풀고 밥을 말기 시작하면 창평국밥의 깊은 맛이 다가온다. 감칠맛과 고기국물의 구수함이 입에 맞다. 곱창은 쫄깃하고 선지를 넣은 암뽕순대는 씹는 맛이 일품이다. 순대는 돼지의 소창을 주로 이용하는데 이 집은 막창을 써 순대피가 두툼하다. 암뽕은 암퇘지의 자궁부위를 의미한다. 다른 말로는 '새끼보'라고도 한다. 암뽕순대는 진짜 암뽕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진짜 암뽕은 국밥에 넣어 먹거나 수육으로 먹을 수 있다. 고서창평국밥은 다재다능하다. 순대국밥, 내장국밥, 선지국밥, 콩나물국밥, 새끼보국밥이 있고, 순대와 막창전골에 내장과 새끼보 수육도 있다.
속을 든든히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망월동 오일팔 묘역이 가깝다는 표지가 있고 '가사문학로'라고 쓰인 안내가 보인다. 담양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담양군에는 가사문학면이 있고 가사문학관이 있다. 가사문학은 율격을 지닌 시이면서도 사실적인 묘사를 곁들인 산문 성격도 있는 조선시대의 독특한 문학 장르이다. 고등학교 고전문학 시간에 배운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관동별곡', '속미인곡', '사미인곡'이 담양에서 났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임금을 향한 충성된 마음을 묘사했던 가사문학의 고장이 담양이다. 송순의 면명정가 본문에는 '이 몸이 이렁 굼도 역군은이샷다'라고 맺는 구절이 있다. 이 몸이 이렇게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라는 뜻이다. 초야에 묻혀 자연을 벗하며 글을 공부하던 선비가 그 안빈낙도를 임금의 은혜라고 표현했다. 500여년이 지나 2024년의 오월을 맞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도 대통령의 은혜라며 고마워할 만한 일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글/사진=양승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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