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을 일부 수정했다. ‘충분히 장기간 긴축을 유지하겠다’는 종전 문구에서 ‘장기간’이라는 표현을 뺀 것이다. 장기간의 의미는 통상 6개월 이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올 하반기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신호로 시장은 해석했다.
하지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현지시간)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지난달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의 세 가지 전제가 모두 바뀌었다고 밝히면서 하반기 금리 인하 여부가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 시점이 더 뒤로 갈 것이냐, 아니면 앞으로 올 수도 있냐 등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작년에 1.4%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1분기 1.3% 성장은 1년간 성장한 것을 한 분기에 다 했다고 볼 수 있다”며 “수출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수가 생각보다 강건하게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GDP 전망치 상향은 기술적으로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고 얼마를 올릴지가 문제”라며 “우리가 뭘 놓쳤는지, 영향이 일시적인지 등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경제가 견조한 성장세를 나타내면 통화정책 차원에서는 금리 인하를 서두를 이유가 없어진다.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필요성이 감소해서다. 높은 성장률이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오히려 고금리를 장기간 유지할 필요성이 커진다.
이 총재는 1분기 GDP 깜짝 증가 이유에 대해선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겸허한 마음으로 어디에서 차이가 났는지 살펴야 할 것”이라며 “날씨 문제인지, 휴대폰 판매 효과인지 그 이유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내려온 것에 대해선 “3.1%나 2.9%나 작은 차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 총재는 “성장률 전망이 바뀌기 때문에 물가도 (바뀔 것)”이라며 “하반기 물가 전망도 같이 봐야 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크다”고 했다. 한은은 오는 23일 발표하는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GDP와 물가 전망치를 공개할 계획이다.
중동의 지정학적 갈등도 예상치 못한 변수로 꼽았다. 이 총재는 “중동사태가 악화하면서 유가와 환율 변동성이 급격히 커졌다”며 “얼마나 안정될지 불확실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귀국하는 대로 이 같은 전제 변화에 대해 직원들의 브리핑을 받을 계획이다. 이 총재는 “보고 내용을 바탕으로 금통위원들과 다시 커뮤니케이션하겠다”고 말했다.
금통위원 진용이 바뀐 것도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 중 하나다. 최근 임명된 김종화·이수형 위원은 아직 통화정책방향 회의에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 총재는 “아직 금통위원들과 논의할 시간이 없었다”며 “사견을 전제로 얘기하려고 해도 새 금통위원의 생각을 모르는 상태라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구조개혁에 대한 평소 소신도 재차 밝혔다. 그는 “고령화로 인한 성장률 하락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며 “1인당 소득이 한국보다 두 배 이상 높은 미국의 성장률이 더 높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구조개혁을 통해 2% 이상의 잠재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보면 구조개혁 없이는 성장률 하락을 막을 수 없다”며 “구조개혁 관련 보고서를 계속 내놓으면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얘기를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빌리시=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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