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친윤석열)계 핵심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권유해놓고 다른 창구에서는 불출마를 촉구했다'며 비판한 당선인은 배현진 의원이 아닌 박정훈 서울 송파갑 당선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는 분위기다.
박 당선인은 10일 페이스북에서 이 의원을 '그 정치인'으로 표현하며 논란의 전말을 밝혔다. 박 당선인은 "'자신에게 출마를 권유했던 사람이 인제 와서 반대했다'고 이야기한 그 정치인의 발언은 저를 겨냥한 것"이라며 "그 권유는 판세가 우리 당에 불리하지 않았던 지난 3월, 그 정치인이 얼마나 그 자리를 원하고 있는지 잘 알았기 때문에 덕담식으로 한 말이었다"고 했다.
총선이 치러지기 전인 지난 3월, 이 의원에게 덕담처럼 원내대표 출마를 권유했지만, 총선 이후에는 이 의원에게 총선 참패 책임이 있기 때문에 출마를 공개 반대했다는 게 박 당선인의 입장이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총선 전의 권유가 마치 총선 이후 있었던 것처럼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3월 초의 통화가 총선 이후의 대화로 변질됐다"고 했다.
박 당선인은 최근 이 의원과 마주친 자리에서 이 의원이 자신을 모르는 척했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불출마 요구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박 당선인은 "지난 4일 가깝게 알고 지내는 기자의 결혼식에 갔더니 그 정치인이 계시더라"며 "그런데 그분이 눈을 피하시길래 제가 '인사는 하셔야죠'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대뜸 '너 나 알아?'라고 황당한 반응을 보이셨다"고 했다.
이어 "그 정치인은 제가 공개적으로 (원내대표 출마를) 만류하는 바람에 본인의 간절했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며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감정싸움을 하는 건 국민들을 짜증 나게 만드는 일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제 소신이지만, 정확한 상황을 알리는 게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부득이 펜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 의원은 지난 8일 SBS 라디오에서 자신에게 전화로 출마를 권유해놓고 정작 다른 창구에서는 자신의 출마를 공개 반대했다는 당선인이 있었다는, 소위 '뒤통수를 맞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혹시 배현진 의원이냐'고 진행자가 콕 집어 물었지만, "구체적으로 이름은 얘기 안 하겠다"고 해 배 의원이 지목됐었다. 이런 모습은 친윤계 간 자중지란으로 비쳤다.
그러자 배 의원은 이 의원의 출마를 만류했던 통화 녹취를 공개하면서 이 의원에게 날을 세웠다. 그는 지난 8일 페이스북에서 "저런 식의 애매모호한 대답이 어떤 오해를 낳고 기사를 생산시킬지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라며 출마를 권유한 적이 없다고 했다. "코너에 몰리면 1만 가지 말을 늘어놓으며 거짓을 사실로 만들고 주변 동료들을 초토화시키는 나쁜 버릇. 이제라도 꼭 고치셨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배 의원이 공개 비판한 다음 날인 지난 9일 이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언론 인터뷰에서 배 의원을 저격한 것이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그분이 초선 의원, 정치 신인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의원은 문제가 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치 시작하지도 않은 분들이 그런 말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발언했는데, 여기서 말한 '정치 시작하지도 않은 분'은 초선 당선인을 의미하는 것이지, 재선인 배 의원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취지다.
이 의원은 또 배 의원이 통화 녹취를 공개하며 비판한 데 대해서도 "소이부답(笑而不答·웃을 뿐 대답하지 않는다)"이라며 "할 말이 없다", "말을 섞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에 배 의원은 "다 들통나니 인제 와서 '배현진은 아니었다'며 또 누구 힘없는 초선 당선인들에게 화살을 돌리냐"며 "라디오 진행자가 '배 의원이냐' 물었을 때 그 즉시 '아니오'라고 하셨어야 한다. 단 세 글자"라고 했다. 이어 "애매모호하게 연기 피우니 기자들이 추측해서 제 이름으로 당연히 기사 썼는데, 그거 노린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