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무의미하게'를 모토로 삼은 사단법인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사진 오른쪽)은 공익변호사단체 사단법인 두루(이사장 임성택), 브라이트 건축사사무소(대표 이충현)와 함께 건물 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턱에 경사로를 설치하는 '모두의 1층'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비장애인은 평소에 거기 턱이 있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식당에 들어가려거나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바퀴 이용자에게는 '차라리 다른 곳을 이용하게 만드는' 큰 걸림돌이다.
홍 이사장이 이 사업에 나선 배경에는 딸 유지민 양이 있다. 유 양은 태어나자마자 척추에 생긴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10여차례에 걸친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이겨낸 유 양은 어디든 휠체어로 이동한다. 홍 이사장은 “지금은 지민이가 휠체어로 혼자 여행도 다닐 만큼 많이 성장했지만, 여전히 접근성이 떨어지는 건물이 많아 외출할 때 밥을 굶거나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 물을 마시지 못하는 일이 흔히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계 대기업에서 일하던 홍 이사장은 딸의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2015년 ‘무의’를 결성했다. 서울 시내 지하철 환승역의 이동 경로를 ‘휠체어를 탄 사람의 눈높이에서’ 꼼꼼히 파악해서 지도로 만드는 일 등을 한다. 과거엔 휠체어로 가기 어렵다고만 여겨졌던 궁(宮) 같은 곳도 무의 구성원 및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파악했다. 그의 의지 덕분에 지금껏 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곳에 갈 수 있게 된 휠체어 이용자가 많다. 처음엔 협동조합 형태였다가 최근 외부 기부를 받을 수 있는 사단법인으로 전환했다. 그는 2년 전 아예 무의 일에 전념하기로 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장애 당사자의 가족으로서 홍 이사장이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은 공익변호사 단체 두루를 만나 본격적인 경사로 설치 운동으로 확대됐다. 두루는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이 규정한 경사로 설치 등에 대한 의무화 규정이 300㎡(약 90평)가 넘는 소매점 음식점 등만 대상으로 되어 있는 것은 휠체어 등 이용자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소송을 2018년 제기했고, 2022년 해당 시행령이 헌법에 위배돼 무효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따라 의무화 대상 면적을 50㎡로 확대했지만, 이런 규정은 신축이나 증·개축 시에만 적용된다. 우리 주변에 아직 경사로 없는 가게가 많은 이유다.
무의와 두루 등이 만든 '모두의1층이니셔티브'는 MZ가 선호하는 '핫플'이 많은 성수동에서 우선 경사로 설치 운동을 벌였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아뜰리에로의 식당가 중 경사로가 제대로 갖춰진 곳의 비중이 13%에 불과했다"고 그는 돌이켰다. 성동구청과 아산나눔재단이 경사로 설치를 적극적으로 후원했지만, 생각보다 까다로운 부분이 많았다. 홍 이사장은 "사업주가 필요성에 공감하더라도 건물주에게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어렵사리 연락이 닿아도 비용 문제를 우려하거나, 번거롭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어 과정이 더뎠다"고 전했다.
그래도 성과가 있었다. 프로젝트 덕분에 경사로 필요성에 공감한 성동구청이 적극적으로 나서 식당 커피숍 편의점 약국 등의 입구에 턱이 있을 경우 경사로 설치시 비용을 지원하는 조례가 통과됐다. 사업주나 건물주 모두 신청할 수 있다.
성동구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는 서울시로 확대되고 있다. 오세훈 시장의 철학에 따라 '약자와의 동행'을 내세우고 있는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모두의1층이니셔티브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KB증권이 경사로 설치비용(7000만원)을 기부했다. 이들은 경사로 설치 뿐만 아니라 이동약자에게 서비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가이드를 만들어 소상공인과 프랜차이즈 등에 배포하는 캠페인도 벌이기로 했다.
홍 이사장은 "성수동에서 경사로를 설치해 본 결과 이게 휠체어 외에 다양한 사람들에게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번 캠페인은 점주들이 장애고객을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도 알려주기 때문에 전반적인 시민들의 인식이 개선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경사로가 당연하게 설치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게 궁극적 목표"라는 그는 "지하철 환승지도를 공공데이터화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홍 이사장은 "장애가 있더라도 불편하지 않은 사회가 되어서, 우리의 이런 작업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그런 순간이 오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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