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AI 투자로 年 600% 수익"…교수·목사도 넋놓고 당한 '폰지사기'

입력 2024-05-15 18:12   수정 2024-07-04 12:11

인공지능(AI) 트레이딩 프로그램을 활용해 해외 선물과 나스닥에 ‘24시간 투자’할 수 있다며 투자자를 모은 팝콘소프트의 대규모 사기 행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실제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고, 다단계 금융 사기(폰지 사기)를 벌인 정황만 밝혀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업체 대표 중 한 명이 재판에 넘겨졌는데도 2·3차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업체의 나머지 실세들이 새 회사를 만들어 같은 형태의 사기를 치고 있어서다.
○8000여 명 피해자 양산한 AI 투자 사기

15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사기,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혐의 등으로 이모 팝콘소프트 대표를 지난 2월 검찰로 송치했다. 이 대표는 구속된 상태로 기소돼 4월 24일 첫 재판을 받았다. 수사당국은 이 대표 외에 피해자들이 주범으로 지목한 안모씨, 오모씨도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팝콘소프트의 AI 트레이딩 프로그램 ‘더불라’를 통해 투자한다며 총 55명에게 43억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팝콘소프트는 이 대표를 비롯해 공범으로 추정되는 안씨, 오씨 등이 2022년 창업한 투자회사다. 모집책인 안씨는 “인간은 결코 AI를 이길 수 없다”며 “이미 1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굴리는 AI 트레이딩으로 선물지수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피해자를 유혹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더불라에 접속하면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똑같은 화면이 나타났고, AI를 통해 실시간으로 매도·매수가 이뤄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팝콘소프트는 30일간 투자에 116%, 90일간 투자에 156%, 1년 후 617%라는 비현실적 수익률을 제시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가짜 HTS’에서 잔액과 종목명, 거래량, 시세 등이 워낙 정교하게 나타나 있어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팝콘소프트는 서울 역삼동과 경기 성남, 대구, 부산, 전남 순천 등 전국에 지사를 두고 세를 불렸다. 한동안 수익도 정상 지급됐으나 작년 6월부터 정산이 멈췄고, 이후 고소·고발이 이어지며 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현재 비대위가 집계한 피해자는 8000여 명에 달하며, 파악된 피해액만 670억원이다. 비대위 대표 이모씨는 “확인한 피해 계좌가 1만8000개여서 피해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투자에 집착, 알고 보니 ‘폰지 사기’
피해자들은 팝콘소프트가 다단계 구조로 운영된 정황도 확인했다. 본부장과 팀장 등 직급별로, 모집한 사람 수별로 수익률에 차등을 뒀는데, 이 때문에 회사 임원급은 투자자 신규 모집과 하위 투자자의 재투자에 광적으로 집착했다고 한다. 한 피해자는 “1년이면 2억원으로 10억원을 만들 수 있다는 말에 다시 돈을 넣었고, 결국 원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피해자 상당수가 중앙대 동문이라는 점도 이번 사건의 특징이다. 간호대 동문회를 오랫동안 주도한 안씨가 동문을 끌어들였고, 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해자를 유입시켜서다. 안씨는 대학에 발전기금을 기부하고, 학부생에게 커피와 도넛을 제공하는 행사를 열며 동문에게 환심을 샀다.

피해자 중에는 중앙대 교수와 대구의 대형 교회 목사도 있었다. 영향력이 있던 목사의 권유로 교인 상당수가 돈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인 교수는 최근 사망했는데, 사망 전 지인에게 “돈이 한 푼도 없어 마이너스 통장으로 겨우 생활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팝콘소프트에 당한 뒤 세상을 떠난 사람만 3명에 이른다.

현재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팝콘소프트의 사기 행각은 멈춘 상태다. 그러나 수사망에서 벗어난 임원들이 경기 용인 등에 비슷한 H업체, C업체를 차려 똑같은 사기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팝콘소프트가 돌려주지 않은 원금을 지급할 것이고 수익도 내주겠다”며 현재 50억~60억원을 모았다고 한다.

팝콘소프트는 일부 피해자에게 최근 원금의 1%를 지급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기꾼은 고도의 지능범”이라며 “이자만이라도 주면 형사상 사기죄가 아니라 민사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빠져나가기 위해 일부 금액을 변제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경은 안씨와 오씨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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