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중 한 곳, 방콕에서 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즐길 것인가.’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 더운 날씨를 피해 즐길거리 가득한 쇼핑몰, 빽빽한 차들로 교통이 쉽게 마비되는 체증 구간처럼 편리와 불편의 아슬아슬한 경계가 재미있게 운집한 방콕. 이 도시에서 조금은 낯설지만 무척 매력적인 녹색 희망을 발견했다.
4월 초였다. 방콕을 찾은 이유는 번화가인 수쿰빗의 한 레스토랑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마법 같은 이 단어가 조금은 지겨워질 정도로 남용되는 듯한 요즘, 다이닝 신에서의 새로운 접근과 시스템에 대해 다시 정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미쉐린 가이드는 지속 가능한 미식 접근법을 제시하는 레스토랑에 ‘그린 스타’를 수여한다.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도 최근 ‘지속 가능한 레스토랑’ 부문이 신설됐다. 올해 이 두 가지를 모두 거머쥔 레스토랑이 있다. ‘네오 인디안 퀴진’을 표방하는 방콕의 레스토랑 하오마다.
하오마를 이끄는 셰프는 인도의 작은 도시 알라하바드 출신의 디판케르 코슬라다. DK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30대 중반의 젊은 셰프. 열일곱이라는 나이에 요리학교를 수료하고 호텔에서 근무하며 요리사의 꿈을 키웠고, 9년 전 태국에 넘어와 호텔 레스토랑 체인을 담당하며 새로운 인생이 펼쳐졌다.
태국에서 2년 정도 일한 후 DK는 색다른 결정을 내렸다. 천연가스로 작동하는 트럭을 장만해 아시아 전역을 다니며 인디안 터치를 더한 타코를 만들어 투어를 떠나기로 한 것. 전기는 태양열 충전 배터리로 작용하고 재활용 물탱크를 장착했다. 이때부터 그는 그가 움직이는 모든 활동에서의 작은 부분들까지 지속 가능한 패턴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방콕에서 푸껫, 베트남, 캄보디아 및 동남아시아 전역을 여행하며 그곳만의 맛, 재료, 조리법을 발견하며 차곡차곡 경험을 쌓았다. 그때 만난 인연으로 치앙마이의 농부와 함께 하오마를 위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오마는 16석 규모의 단품을 다루는 캐주얼 식당으로 작게 시작했다. 하지만 식당 운영을 위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의 뼈대를 처음부터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오마 농장과 시스템을 보면 이해가 쉽다. 방콕 도심에서 23㎞ 떨어진 ‘농촉’이란 지역에 있는 ‘하오마 팜’을 DK와 함께 방문했다. 유기농 농법으로 재배하는 허브와 망고 파파야 등 열대과일, 그리고 750마리 이상의 닭, 12마리의 염소, 4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재료 100%를 하오마 레스토랑이 사용한다. 매주 두 번씩 수확을 위해 DK 셰프가 직접 방문하고 직원들이 직접 관리한다고. 이외에도 믿을 수 있는 생산자들과 함께 와인 등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유기농 및 생물역학적 백반을 재배하는 소규모 농부, 포도나무 재배자를 기반으로 만든 와인, 태국 부티크 소규모 농부들로부터 얻은 야생 차와 현지 커피가 포함된다.
농사 시스템도 특별하다. 하오마 팜은 폐쇄형 루프 시스템에서 양식과 수경 재배를 결합한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아쿠아포닉스를 이용한다. 아쿠아포닉스 농장에 사용하는 20만L 이상의 빗물을 1년 내내 보존하고 손님이 탄산수로 소비할 수 있도록 노르딕 워터 시스템을 이용해 재활용하기도 한다. 아쿠아포닉스 시스템에서 40가지 허브와 각종 채소·과일을 재배하고 이 물로 레스토랑 안에서 물고기를 기르는데, 어류에게 주는 사료 또한 자체적으로 나오는 유기농 폐기물을 퇴비화한 것을 사용한다.
레스토랑을 운영하기도 바쁜데 이렇게까지 자체 농장을 운영하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 때문이었어요. 1년 내내 제대로 된 재료를 얻고 좋은 품질의 다이닝을 제공하기 위해 일본과 호주, 프랑스 등에서 재료를 수급하곤 했는데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자체 생산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어요.”
그는 코로나 기간에 더 넓은 시선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0년 3월 하오마 문을 잠시 닫고 쌀 수백㎏과 식재료를 동원해 바나나 잎에 싼 밥을 만들고, 2만달러 이상의 기부금을 모금해 도시 노숙인들에게 12만5000끼의 식사를 제공했다. 그는 #NoOneHungry라는 캠페인으로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변화의 챔피언(Champions of Change)’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DK는 자연을 위한 영양분을 만들어 가는 행위야말로 지속 가능한 움직임이라고 말한다. 그와 함께 농장을 둘러보고 농장 근처 허름한 태국 요리 전문점에서 식사하며 나눈 이야기를 통해 그가 이미 셰프를 넘어선 활동가이자 미래를 바꾸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네오 인디안 퀴진은 우리에겐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장르지만 실제 그의 레스토랑에서 손님으로 자리해 맛보는 15가지 코스는 새롭고도 익숙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맛이다. 오전에 농장에서 본 식재료를 하얀 접시 위에서 다시 만나는 것은 농축된 삶의 기승전결을 맛보는 기분이랄까. 마지막으로 DK 셰프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10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릴 테지만 나와 하오마는 우리가 추구하는 개념을 전달하고 끊임없이 음식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 오직 미쉐린 3스타를 향하는 목표보다는 더 넓게 자연에 대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그것을 우리의 삶과 정체성에 뿌리로 삼고 영양분이 되는 활동을 할 수 있다면 아쉬움이 없을 것 같다.”
방콕=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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