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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구글·메타 등 자국 기업에 '중국 해저 통신망 수리선' 비상령을 내렸다. 태평양 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국 수리선이 위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끄고 수상한 행적을 보이면서다. AI(인공지능) 기술 발달 등으로 '안전한 데이터'의 중요성이 나날이 중요해지면서 해저 통신망이 미·중 패권 경쟁의 주요 전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최근 자국 통신사들에게 태평양 해저 케이블이 중국 수리선의 조작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구글, 메타 등 해저 통신망을 자체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에도 우려를 전했다.
국무부는 중국 국영 케이블 수리업체 에스비서브마린시스템(SBSS)이 무선 위성 추적 서비스에서 선박의 위치를 숨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WSJ은 해양 데이터 제공업체 마린트래픽의 지난 5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SBSS 수리선에서 선박 정보를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인 위성중계기(트랜스폰더)가 꺼진 정황을 여러 건 발견했다.
SBSS의 볼드매버릭호는 2019년 싱가포르에서 해저 케이블이 밀집한 싱가포르 해협으로 출항했다. 그곳에 도착한 배는 몇주간 여러 차례 중계기를 껐다 켜면서 1제곱마일(=약 1.609㎞) 지역을 돌아다녔다. 4일 간 완전히 중계기가 꺼진 뒤 이 선박은 다시 싱가포르로 복귀했다.
2020년 6월 중국 푸저우에서 출발한 SBSS의 푸하이호는 홍콩 방면으로 이동한 뒤 완전히 중계기를 껐다. 신호가 다시 잡힌 것은 한 달 뒤 대만 동쪽 해양에서였다. 2021년 서해에서도 이런 행위를 반복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런 '데이터 실종' 상태가 상업용 케이블 선박 사이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미 정부가 수리선의 수상한 행동을 우려하는 것은 해저 케이블망으로 흐르는 데이터를 도청하거나 훔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이 배들이 중국군을 위해 케이블을 부설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WSJ에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특히 군사 통신과 같이 전략적 중요성이 있는 케이블 근처에서 발생하는 경우 의심이 들 수 있다"고 말했다.
SBSS는 1995년 중국과 영국의 합작 투자로 설립됐다. 중국 국영통신사인 차이나텔레콤이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으며 영국 글로벌마린시스템으로부터 나머지를 인수하는 중이다. 30년째 중국공산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아 리가 2020년부터 회사 노동조합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문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다른 국적의 수리선박을 찾으려 해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컨설팅회사 인프라애널리틱스를 운영하는 마이클 컨스터블은 "케이블 소유주들에게 전 세계의 노후화돼가는 약 50척의 (수리) 선박 중 선택의 여지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니케이아시아는 양국 갈등이 고조되면서 중국 해양에 새로 설치되는 해저 통신망이 급감했다고 전했다. 올해 중국에 신규 부설되는 해저 케이블망은 3개로, 싱가포르의 절반이다. 내년부터는 신규 설치 계획이 전무하다. 미국과 아시아 간 데이터 트래픽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강해 일본, 싱가포르, 남태평양 도서국을 거치는 추가 케이블 설치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중국도 독자적으로 해저 통신망 설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관계자들을 인용해 중국 3대 통신사인 차이나텔레콤과 차이나모바일리미티드, 차이나유니콤이 5억달러(약 6700억원) 규모의 신규 케이블 설치 계획을 추진한다고 지난달 보도했다. 홍콩과 하이난을 출발해 싱가포르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프랑스 등으로 이어지는 케이블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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