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모빌리티 산업이 격변하고 있다. 과거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던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소비시장이 됐고, 이제는 새로운 모빌리티 산업의 혁명을 주도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중국 최첨단 기술을 뜻하는 ‘레드 테크’의 현주소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달 중국 수도 베이징과 광둥성 선전, 후베이성 우한 등을 찾았다. 현장에선 지리자동차, 둥펑자동차 등 완성차 제조사뿐 아니라 화웨이 샤오미 바이두 등 대표 테크 기업들도 하나같이 ‘모빌리티’를 외쳤다. 자동차산업이 내연기관에서 전동화, 스마트화로 발전하는 가운데 중국 기업들은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중국의 모빌리티 야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분야는 자율주행 기술이다. 세계 최대 자율주행 도시로 떠오른 중국 중부의 교통 요충지 우한. 지난달 찾은 후베이성 우한 자율주행 시범지역에는 운전사가 없는 ‘완전 무인택시’(로보택시)가 여럿 돌아다녔다. 인터넷 기업 바이두가 운영 중인 ‘뤄보콰이파오’다. 그 옆을 단돈 0.01위안(약 2원)만 주면 탈 수 있는 둥펑자동차의 ‘무인 버스’가 달렸다. “완벽한 자율주행 도시를 가장 먼저 구현해 글로벌 ‘시티 브레인’(지능형 도시) 경쟁의 승자가 될 것”이란 중국의 야심 찬 목표는 서울의 14배 크기 도시를 거대한 미래 기술 실험실로 만들었다.
바이두는 구글의 무인 자동차 계열사인 웨이모보다 5년 늦은 2013년 자율주행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이미 이를 뛰어넘는 기록을 세웠다. 바이두 등이 지난해 우한에서 거둔 로보택시 탑승 건수는 73만2000건. 2008년 출범한 구글의 무인 자동차 자회사 웨이모의 지난해 상업용 운행 기록(약 70만 건)을 넘어섰다.
리옌훙 바이두 창업자 겸 회장은 지난달 16일 선전에서 열린 바이두 인공지능(AI)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바이두 지도 앱은 중국 내 360개 도시에서 활용되며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를 자랑한다”며 “우한에 연내 1000대의 로보택시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시 전체가 ‘자율주행 실험실’인 우한은 로보택시 등이 마음껏 운행할 수 있는 도로 길이만 3378㎞에 달한다. 서울~부산을 여덟 차례 오갈 수 있는 거리다. 바이두가 단시일에 1억㎞에 달하는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중국 정부가 자율주행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건 2015년이다. 미국의 기술력을 뛰어넘겠다며 꺼낸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에서 자율주행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러자 여러 지방정부가 “자율주행 테스트 기지가 되겠다”고 손을 들었다.
우한은 2019년 자율주행 시범단지로 지정된 지 5년 만에 세계 최대 자율주행 도시란 타이틀을 얻었다. 우한시가 바이두, 샤오미 등에 발급한 자율주행 테스트 차량 번호판은 약 2000개다. 지난해 우한에서 로보택시, 무인버스 등 자율주행 상용화 서비스를 이용한 연간 이용 승객은 90만 명에 육박한다. 중국에는 우한 같은 자율주행 시범지역이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16곳이나 더 있다. 박은균 KOTRA 우한관장은 “내륙 도시인 우한은 자동차와 정보기술(IT), 인재 등 삼박자를 두루 갖춘 도시로, 자율주행에 최적화된 테스트베드”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디트로이트’로 불리는 우한에는 중국 4대 국유 자동차업체인 둥펑자동차를 포함해 13개 자동차 공장이 있다. 둥펑웨샹은 둥펑의 자회사이자 2013년 설립된 회사로, 중국 자율주행 기술을 세계 표준으로 만드는 데 ‘첨병’ 역할을 한다.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 서비스를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는 둥펑웨샹이 한국 언론에 본사를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이 자율주행 상용화에 얼마나 ‘진심’인지는 단돈 0.01위안(약 2원)에 불과한 자율주행 버스 요금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자율주행 시대가 왔다는 걸 시민이 체험하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다. 우한에서는 어릴 때부터 유치원에서도 자율주행 관련 안전 교육을 하고 있다. 추 전략관은 “결국 새로운 기술이 성공할지는 수요 창출에 달렸다”며 “이를 위해선 생산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소비자 인식을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이처럼 자율주행 상용화에 힘쓰는 건 자율주행 기술이 이동 수단의 ‘게임 체인저’일 뿐 아니라 군사용으로도 활용될 수 있어서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핵심 기술이라는 얘기다. 특허청에 따르면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관련 특허(2013~2019년) 비중은 중국이 30.7%로 미국(27.6%)과 일본(20.8%)을 앞섰다.
테크업계도 참전…샤오미, SU7 출시
중국의 모빌리티 야심은 전기차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중국의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점유율(55.7%)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중국 내수를 뺀 해외 점유율도 12.5%로 3년 전(6.9%) 대비 두 배 가까이로 높아졌다. 지난해 중국에서 팔린 신에너지차 모델만 403종에 달한다.
지난달 25일 중국 베이징공항 인근 순이구 중국국제전시장(CIEC)에서 열린 ‘베이징 모터쇼 2024’에 공개된 신차 203대 중 78.8%는 신에너지 차종이었다. 가솔린차 신차는 32대로, 2023년 상하이 모터쇼(61대)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최근 중국 전기차 시장이 역기저효과, 보조금 감소 등으로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지만 전시 현장에서는 국내외 완성차들의 전동화 노력이 느껴졌다.
‘붉은 전기차’의 진군은 중저가 차량을 넘어 럭셔리카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영국 로터스를 인수한 지리그룹의 펑칭펑 로터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우한 로터스 공장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 ‘중국산 럭셔리 전기차’의 힘을 보여줄 것”이라며 “올해 한국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로터스는 2017년 지리에 인수된 이듬해 내연기관차를 2028년부터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75년 역사의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 로터스는 2017년 지리그룹의 품에 안기면서 ‘고성능 배터리’라는 새로운 심장을 달았다. 웬만한 작업은 로봇이 다 하는 이 공장에선 로터스의 첫 순수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엘레트라’와 전기 승용차 ‘에메야’ 생산이 한창이었다. 로터스에는 세계 1위 배터리셀 제조사인 중국 CATL의 고성능 삼원계 배터리가 장착됐다. 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기업들이 주름잡고 있는 삼원계 하이니켈 배터리 시장에도 중국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로터스는 중국의 ‘전기차 굴기’가 얼마나 깊고 넓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중국은 1000만원짜리 초저가 전기차부터 수억원에 달하는 럭셔리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앞세워 저개발국부터 선진국까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중국 테크 업계도 전기차 개발에 한창이다. 대륙의 실수로 불리는 샤오미가 대표적이다. 중국 대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한데 모인 베이징 중관춘 상디의 샤오미 본사는 전기차 SU7 출시로 들뜬 모습이었다. 샤오미 본사 곳곳에는 SU7과 관련된 전광판이 보였다. 이곳이 가전회사인지 자동차 회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곳에서 만난 직원들은 SU7 출시 이후 분위가 고무됐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애플도 실패한 전기차를 샤오미가 먼저 만들었다는 자부심에서다. 샤오미 고위 관계자는 “우리도 이렇게 잘 팔릴 줄 몰랐다”며 “‘이윤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잘 만들라’는 레이쥔 회장의 지시 덕분”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화웨이는 2019년부터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기반으로 완성차 업체와 협력하며 전기차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스마트카 솔루션 매출은 47억3700만위안(약 9014억원)으로 2022년(20억7700만위안)보다 약 2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1월엔 스마트카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 인왕즈넝지수를 설립했다. 총 10억위안(약 1860억원)을 출자했다.
강기석 서울대 차세대이차전지센터장은 “시쳇말로 ‘계급장’ 떼고 중국산 전기차와 경쟁할 수 있는 회사는 지금 이 순간,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우한·선전=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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