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홀리는 안상수의 '한글 도깨비'

입력 2024-05-22 17:44   수정 2024-05-23 00:40


‘안상수체’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글꼴 가운데 하나다. 열쇠를 세워 놓은 듯한 글씨체는 예상대로 안상수가 만들었다.

국민적 타이포그래피 작가 안상수(사진)가 부산에서 특별전 ‘홀려라’를 열고 있다. 갤러리는 해운대 앞바다가 통창으로 훤히 바라다보이는 오케이앤피 부산. 안상수가 미술관이나 대안공간 등 비영리기관의 시설이 아니라 상업화랑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7년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선 안상수 회고전이 열렸는데, 원로 작가의 업적과 자취를 되짚어보려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였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13년 김구림, 2015년 윤석남에 이어 2017년도에는 안상수를 꼽았다.

그는 이번 전시에 한글의 자음 ‘ㅎ’과 조선 시대 민화의 한 종류인 문자도를 결합한 ‘홀려라’ 시리즈를 대거 선보였다.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첫선을 보인 이 연작은 당시 많은 호평을 받으며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되기도 했다.

전시장 한편에는 2002년 리움미술관의 전신인 로댕갤러리에서부터 선보인 작품인 ‘알파에서 히읗까지’도 함께 걸려 있다. 서양에서는 전부를 뜻하는 관용어로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쓰는데, 안상수는 이 관용구와 한글을 결합해 작품을 고안했다. 이 연작은 처음 선보일 당시 미술관 벽에 그려졌고 이후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돼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번에는 캔버스로, 또 오브제로 고스란히 옮겨왔다.


안상수는 한글과 한자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그린 ‘한글 도깨비’ 시리즈도 처음 선보였다. 한국 전통문화를 보전하고자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자신의 인생을 투영한 작품들이다. 그는 외국 문물을 받아들여 표현하는 대신 전통에 집착했다. 세종대왕의 한글과 민중의 민화에 꽂혔고, 전통을 향한 뚝심으로 2007년 구텐베르크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상 소감으로 “한글이 나를 구원했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서는 ‘이효리 문신’으로 알려진 무늬도 볼 수 있다. 인간이 가장 아래에 깔려서 물고기와 네 발 달린 동물들 그리고 식물을 떠받들고 있다. 그는 이 상징을 그리며 인간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전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외계:인’에도 그가 그린 상징물이 쓰였는데, 이번 전시에서도 해당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안상수가 사용하는 검은 안료는 모두 흑연으로 만들어졌다. 그에게 어릴 적부터 가장 친숙한 재료가 바로 연필이기 때문이다. 작업할 때 그는 캔버스에 그리고자 하는 모양대로 테이프를 붙인다. 그런 다음 흑연으로 만든 안료를 들이붓는다. 붓이나 넓은 판지로 안료를 밀어내면 작품의 윤곽이 드러난다. 온몸을 사용해야만 하나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시인 이상의 ‘날개’에서 호(號)를 따와 ‘날개’로 불리는 안상수의 부산 전시는 오는 6월 9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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