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는 지난해 20조원 안팎이던 AI용 주문형반도체(ASIC) 칩 시장이 2027년엔 75조원 규모로 네 배가량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자체 AI 칩 개발에 나선 빅테크가 설계를 외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큰손 쟁탈전’도 벌어질 조짐이다.
24일 외신 등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최근 ASIC 관련 사업부를 신설하기로 했다. 누구나 사다 쓸 수 있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AI 가속기 등 범용 반도체만 팔고 있는 엔비디아가 ASIC 사업에 뛰어든 건 주요 고객인 오픈AI, MS, 구글 등을 붙잡기 위해서다. 이들 기업이 자체 칩 개발에 나서면서 머지않은 시기에 엔비디아의 범용 칩을 더 이상 사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 걸 감안한 조치다. 고객 이탈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느니 이들이 개발하는 자체 칩을 대신 설계해주는 사업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관련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란 점도 엔비디아의 참전을 불렀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AI용 ASIC 칩 시장이 2027년 전체 AI 칩 시장(1820억달러)의 30%인 550억달러(약 75조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AI용 하이엔드 ASIC 시장은 130억~180억달러(약 17조~24조원) 수준이었다.
삼성전자도 ASIC 시장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네이버와 함께 개발하고 있는 AI 추론용 칩 ‘마하-1’이 대표적이다. 네이버의 AI 시스템을 구동하는 데 필요한 칩 설계를 대행했다는 점에서 삼성이 ASIC 사업에서 거둔 성과로 꼽힌다. 종합 반도체 기업인 삼성은 설계 대행뿐 아니라 제품 생산까지 일괄 담당한다. 두 회사는 후속 제품인 ‘마하-2’ 개발에도 들어갔다.
브로드컴은 구글의 AI용 반도체인 텐서처리장치(TPU) 설계를 대행했다. 범용 중앙처리장치(CPU)보다 연산 속도가 10배 가까이 빠른 이 제품은 연내 대량 생산에 들어간다. 마벨의 파트너는 아마존이다. 전력 소비를 줄이고 연산 속도를 끌어올린 ‘그래비톤’ AI 칩을 함께 개발하고 있다.
두 업체가 이끌던 시장에 반도체 설계 분야의 강자들이 새로 진출하거나 사업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엔비디아는 엄청난 자금력과 오랜 기간 거래해온 고객 네트워크를 앞세워 빅테크는 물론 게임기, 자동차 분야에서도 ASIC 사업을 펼칠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반도체 기업도 하나둘 뛰어들고 있다.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업체인 노바텍은 디스플레이 관련 주문형 반도체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세계 최대 모바일 칩 업체 미디어텍은 메타와 증강현실(AR) 기기용 맞춤형 칩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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