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임영웅이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선 그는 이틀간 10만명의 환호 속에서 3시간을 꽉 채워 노래하고 춤추며 팬들을 감동시켰다. 압도적인 공연 스케일만큼이나 높은 완성도로 관객들의 만족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시간이었다.
임영웅은 26일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콘서트 '아임 히어로 - 더 스타디움(IM HERO - THE STADIUM)'을 개최했다. 전날에 이은 2회차 공연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현재 가장 큰 사랑을 받는 가수를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임영웅을 떠올릴 테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에 출연해 최종 우승을 거두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임영웅은 트로트를 넘어 발라드, 댄스까지 도전하며 대중성과 팬덤 파워를 동시에 잡았다.
지난해 진행한 전국투어에 10세부터 100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 총 22만여명이 온 사실이 그의 인기를 고스란히 증명한다. 이번 공연으로는 단 2일간 총 1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날 월드컵경기장역으로 향하는 환승역 중 하나인 합정역에서부터 하늘색 옷을 입은 영웅시대(공식 팬덤명)들이 대거 눈에 띄었다. 삼삼오오 모인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하늘색 포인트의 모자, 손수건, 헤어핀 등을 착용하며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를 보고 있던 젊은 커플은 "너무 귀여우시다. 즐기고 오시라"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손톱까지 하늘색으로 칠한 50대 팬 A씨는 "공연장까지 오는 길이 온통 하늘색이지 않냐. 너무 신난다"면서 "아까 역에서 만난 다른 두 분과 친해져서 한참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30대 B씨 역시 "엄마 아빠가 이렇게 신난 모습은 처음 본다"면서 "지난 콘서트 때는 티켓 예매에 실패해서 너무 속상했는데 더 큰 공연장에서 보시게 돼 기쁘다"라고 말했다.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자마자 빨강, 파랑, 초록색 화살표가 눈에 들어왔다. 동측, 서측, 남측 구역별로 티켓의 색깔을 달리해 해당 색깔에 맞춰 바닥에 화살표 표시를 해둔 것이었다. 색깔대로 화살표만 잘 따라가면 입구까지 헤매지 않고 갈 수 있도록 해둔 것이었다. 곳곳에 배치된 진행요원들은 수시로 안전 및 입장 동선과 관련해 안내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팬들의 모습에서 지루함이란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연장 외부에는 기념 스탬프 찍기, 스페이스맨에서 엽서 보내기를 비롯해 휴식 공간인 히어로 스테이션, 히어로 익스프레스, 히어로 갤러리 등이 마련돼 대기시간마저 행복한 기억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임영웅이 광고모델을 맡고 있는 브랜드의 이벤트 부스도 다양하게 차려져 있었다. 팬들은 여기저기서 '인증샷'을 남겼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무대 위로 화려한 불꽃이 터졌다. 이와 함께 임영웅이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뜨거운 함성이 쏟아졌다. 5만여명이 일제히 내지르는 환호성은 마치 천둥과 같았다. 이와 함께 하늘색 응원봉 물결이 일렁이자 임영웅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객석을 둘러봤다. 이어 "영웅시대 소리 질러"라고 외치며 호응을 유도했다.
경쾌하고 기분 좋은 '무지개'를 첫 곡으로 택한 임영웅은 시작부터 특유의 탄탄한 보컬로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무지개'에 이어 '런던보이', '보금자리'까지 잇달아 부르며 대규모 경기장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몰입감을 만들어냈다.
시작부터 각별한 팬 사랑을 드러낸 임영웅이었다. 그는 객석을 보며 "비가 내리는데도 자리를 꽉 채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고, 이어 "공연장 밖에도 굉장히 많은 영웅시대 분들이 계신다고 들었다. 밖에 계신 영웅시대 분들도 반갑다"고 인사했다. 이어 나눠준 우비를 잘 챙겨입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오래 기다리신 만큼 몇십 배, 몇백 배 더 보답해드리겠다"고 외친 그는 무대와 스크린이 설치된 북측을 제외하고 동측, 남측, 서측에 각각 인사를 건넸다. 시야제한석에 앉은 팬들을 향해서도 "섭섭하지 않게 서비스해 드리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어 "어제 처음 무대로 올라왔을 땐 울컥해서 울음을 참느라 힘들었는데 오늘은 씩씩하게 올라왔다. 어제보다 더 신나게 뛰어놀아 보도록 하겠다"고 외쳤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잠실주경기장과 함께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급 경기장이다. 하지만 잔디 훼손에 대한 우려가 커 잠실주경기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가기 전까지 K팝 공연 대관이 쉽지 않았다. 평소 축구 팬으로도 잘 알려진 임영웅은 이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그라운드 사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라운드에 좌석을 깔지 않고, 중앙 무대 단 하나만 설치하는 식이었다.
공연의 스케일이 커진 반면 그라운드 사용은 최소화하니 관객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는 컨디션이다. 하지만 이 또한 상쇄했다. 그라운드 바깥쪽으로 4면 돌출무대를 설치해 관객들을 '직접 찾아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물론 쉬운 방법은 아니었다. 아티스트와 댄서들이 계속 위치를 옮겨 다녀야 하는 체력적 수고로움이 있었다. 중앙 무대로 향하는 연결 무대도 설치하지 않아 하얀 천을 씌운 그라운드를 직접 걷고 뛰어다니며 공연했다. 관객과 경기장 모두를 배려한 선택이었다.
어느 위치에 있는 관객이든 만족을 주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다. '런던보이' 무대를 할 때는 중앙 무대에 선 임영웅을 주축으로 그라운드에서 약 100여명의 댄서가 사방에서 대형 퍼포먼스를 펼쳐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들의 블루스' 무대 때는 열창하는 임영웅과 함께 그라운드 위 무용 퍼포먼스가 어우러졌다.
'소나기 동쪽', '사랑해요 그대를', '따라따라'를 부르면서는 돌출무대를 직접 걸어서 옮겨가며 무대를 소화했다. '사랑은 늘 도망가', '사랑역', '사랑해 진짜'는 열기구에 올라타 불렀다.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상당히 높은 높이까지 올라간 상태에서 3곡을 내리 소화한 것이다.
임영웅은 "여러분한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데 공연장이 넓어서 쉽지 않더라. 그래서 준비해봤다"면서 "안전하게 만들어져서 여러분과 가까이서 소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리가 조금 후들거린다. 없던 고소공포증도 생기게 하는 것 같다.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미 임영웅은 트로트 가수로 한정 짓기 어려운 영역에 들었다. 이날 역시 구성진 트로트는 물론 짙은 감성의 발라드, 팝 스타일의 곡, 댄스곡까지 다채롭게 선보였다. '바램', '온기', '모래 알갱이', '아버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를 땐 그의 진한 목소리에 젖어들었고, 임영웅이 랩을 하고 춤을 추는 '아비앙또(A bientot)', '두 오어 다이(Do or Die)' 무대에서는 흥겹고 파워풀한 느낌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아파트', '남행열차'를 부를 땐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공연 중간 빗줄기가 거세졌지만, 임영웅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하게 고음을 뽑아냈고 "빗속에서 부르니까 더 좋은 것 같다. 마치 하늘이 나를 위해 특수효과를 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팬들은 걱정했다. 임영웅은 "춥지 않냐.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이상하다 싶으면 근처에 있는 진행요원에게 바로 말을 해줘야 한다. 공연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첫째도, 둘째도 건강이다. 건강해야 다음 공연도 올 수 있다"고 거듭 당부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공연은 더 풍성해졌다. '홈(Home)' 무대 때는 그라운드를 장식한 대규모 댄스 퍼포먼스가 또 한 번 놀라움을 안겼고, '히어로(HERO)' 무대에서는 화려한 폭죽이 하늘을 수놓아 팬들을 열광케 했다.
공연 말미 임영웅의 진심을 담은 영상이 공개됐다. 데뷔 2849일 만에 스타디움에 입성했다고 의미를 부여한 그는 "다 여러분들 덕분"이라며 "앞으로 더 큰 꿈을 꾸겠다. 사랑한다"고 했다.
이어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서울의 달'을 부른 뒤 직접 소감을 밝혔다. 임영웅은 "평생에 한 번 설 수 있을까 말까 한 이 무대를 이틀이나 할 수 있었다.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은 시간이었다. 이 모든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를 잘 알고 있다. 늘 기적을 행하는 영웅시대라고 말하는데, 이건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말했다.
스태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전날 공연에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업고 자리까지 안내해 화제가 됐던 진행요원을 소개하기도 했다. 임영웅은 "어제 연로하신 어르신을 업고 올라간 진행요원 분이 있다. 2층에 계신다고 하더라. 진정한 히어로들이다. 정말 멋진 일을 하셨다"며 박수를 보냈다. 이후 '인생찬가'를 부르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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