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재의 집행간부 인사는 '제한된 파격'으로 평가된다. 아주 새로운 인물을 전격 발탁하는 식의 틀을 완전히 깨는 파격 인사는 아니지만 기존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박 부총재보는 통화정책과 관련해서는 한은 내 최고 전문가로 평가되지만 통화정책국장 경험은 없다. 직전 이상형 부총재보를 비롯해, 박종석·허진호 전 부총재보 등이 통화정책국장 출신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
지난 17일 취임한 권민수 부총재보도 외자운용원장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부총재보가 됐다. 이 자리는 국제국장이나 국제협력국장이 승진하던 자리였지만 외화 자금 운용과 관련된 최고 전문가인 권 부총재보가 발탁됐다. 최근 임명된 두 사람은 '젊은 한은'을 추구하는 차원의 인사라는 해석도 있다. 박 부총재보와 권 부총재보는 모두 1970년생이다. 한은 집행간부 중 1970년대생은 이 두사람뿐이다.
앞선 집행간부 인사에서도 이런 기조가 엿보였다. 이 총재가 2022년 처음으로 임명한 이종렬 부총재보는 금융결제국장에서 승진했다. 주로 금융안정국 출신이 부총재보 승진에 유리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결제국에서 대부분 경력을 보낸 이 부총재보가 발탁됐다.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등 결제 관련 이슈가 중요하다는 점이 고려된 인사로 평가됐다.
지난해 6월 취임한 채병득 부총재보는 인사경영국장 출신으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경력으로는 특이한 점은 없지만 한은의 첫 상업계 고등학교 출신 부총재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3년간 조사국장을 지낸 김웅 부총재보는 '인사 문법'을 그대로 따랐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당시에는 김 부총재보를 임명하면서 1급으로 승진한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은 최창호 거시전망부장을 조사국장에 발탁하는 파격을 줬다. 최 국장은 올 초 인사에서 통화정책국장으로 이동하면서 또 다른 파격의 주인공이 됐다. 한은의 핵심 부서인 조사국장과 통화정책국장을 모두 지낸 것은 이주열 전 한은 총재 이후 처음이다.
유상대 부총재는 주택금융공사 부사장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부총재가 됐다. 한은 부총재가 금융통화위원을 겸임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주금공 부사장이 부총재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성태·이주열·박원식·윤면식·이승헌 부총재는 부총재보에서 바로 승진했고, 외부를 거쳐 온 이승일·장병화 부총재는 서울외국환중개 대표 출신이었다.
금통위에 이어 집행간부까지 이 총재 취임 후 임명된 인사로 채워지면서 향후 한은의 정책 향방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장 큰 이슈는 올 하반기 통화정책 전환(피벗)이다. 미국의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커지고, 국내 경제가 견조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도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다. 이런 상황을 분석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새 인물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한국은행법 개정을 통한 대출제도 개편도 이 총재 임기 후반부 중점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이 비은행 금융기관의 위기시 개입할 수 있는 제도를 상시화하자는 것으로, 한은은 이 과정에서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CBDC 연구도 이 총재가 관심을 두는 분야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을 중심으로 주요 기축통화국과 함께 진행하는 아고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관련 부서들의 활동 반경이 확대되고 있다.
한은 안팎에선 "이 총재가 주요 인선을 마무리한만큼 임기 후반부 더 적극적으로 자기 색깔을 낼 것으로 보인다"는 예상이 많다. 약 2년간 한은이 어느때보다도 역동적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 2년 간 '한은사(寺)'에서 탈피한 한은이 오는 2년은 본격적으로 '시끄러워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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