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기차 시장에 늘 따라오는 단어가 있다. 캐즘(chasm)이다. 캐즘은 새롭게 개발된 제품이나 서비스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겪는 침체기를 말한다. 과연 전기차가 캐즘을 이겨내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지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2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기차 시장은 전년 동기대비 20.4% 성장했다. 배터리 시장 규모도 같은 기간 22% 커졌다. 여전히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2017년~2023년의 성장률이 40%를 넘었던 점을 감안하면 수요가 조금씩 둔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 상황은 더 나쁘다. 한국 전기차 시장은 지난해 주요국 중 유일하게 역성장 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26%나 감소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전기차 시대가 멀어지는 것이냐는 우려가 나온다. GM과 포드 등 일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출시 계획을 연기하고 있다는 소식도 이런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충전이란 불편함이 없으면서 연비가 좋은 하이브리드카의 인기가 높아진 것도 전기차 캐즘의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전기차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전 세계 신차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11% 정도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등 소비자가 전기차를 주저하는 문제가 해결되면 전기차 대중화가 열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지난달 21일 열린 ‘EV3 글로벌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전기차 시장은 당연히 미래에 가야 할 방향이고 조만간에 전기차 시장은 다시 성장할 걸로 예측한다"며 "전기차의 수요가 하이브리드로 가는 게 아니고 가솔린·디젤 등 내연기관차 수요가 이동할 것이라는 예측이 예전부터 있었다"고 설명했다.
송 사장은 그러면서 "전동화로 가는데 있어 장애물인 가격과 충전 인프라 등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상당한 해결책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전기차 대중화 모델로 수요를 창출하고 고객의 필요한 부분에 대응해서 성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2월 ‘EV 트렌드 코리아’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기차를 사용하며 느낀 가장 큰 불편 및 애로사항으로 응답자는 ‘주행거리 제약으로 인한 충전의 번거로움(36%)’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충전 인프라 부족(28%)’과 ‘높은 차량 가격(27%)’ 순이다. 이런 애로 사항이 해결되면 전기차 소비자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신차 판매 시장에서 전기차 비중이 40%를 넘어선 중국은 이 문제를 모두 해결해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BYD 등 중국 업체가 내놓은 1000만원대 전기차도 인기다.
자극받은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소비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가격대의 전기차 모델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최근 2000만~3000만원대 저가 전기차 출시를 밝혔고, 테슬라도 2만5000달러 수준의 저렴한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전기차 대중화에 기대를 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지난달 9일 열린 '자동차의날' 기념 콘퍼런스에서 "과거와 같은 높은 수준의 증가율을 기록하기는 어렵겠지만, 전기차 시장은 1~2년간의 조정기를 거쳐 증가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원장은 과거 내연기관차 시대에도 자동차산업이 약 10년 주기로 부침을 지속해 왔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전기차도 산업화가 본격화함에 따라 향후 내연기관과 유사한 수요 행태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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