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SF) 작품은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작가들은 당대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그럴듯한 미래를 상상한다. 과학자가 실험 전에 가설을 먼저 세우는 것과 비슷하다. 과학자가 새로운 과학 법칙이나 기술을 발견한다면 SF 작가는 소설이나 영화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만화《심술통》으로 유명한 이정문 화백이 1965년에 그린 ‘서기 2000년대의 생활의 이모저모’도 예언서로 통하는 작품이다. 전파 신문(인터넷 신문), 전기 자동차, 소형 TV 전화기(스마트폰), 원격진료와 원격교육, 태양열을 이용한 집 등이 묘사돼 있다. 이 화백은 한 인터뷰에서 “당시 동네 의원이 거의 없고 아프면 집에서 그냥 앓아야 해서 원격 의료를 그렸다”고 설명했다.
머스크 CEO는 지난해 11월 출시한 인공지능(AI) 챗봇 ‘그록’을 로버트 하인라인의 SF 소설《낯선 땅의 이방인》에 나오는 화성인 언어명에서 땄다. 이 소설의 화성어는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는 걸 돕는다. 최근 주목받는 AI 챗봇의 목표이기도 하다. 머스크 CEO는 SF 작품에서 받은 자극을 현실화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듄》의 세계관은 일종의 반(反)기계 운동인 ‘버틀레리안 지하드’에서 시작된다. AI에 지배당한 인간이 기계를 모두 파괴하고 AI를 전면 금지한다. 기계의 각종 데이터 접근 자체도 막았다. 대신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기계를 대체한다. 《듄》에서 ‘스파이스’라는 물질을 두고 귀족 가문들이 싸우는 이유다. 스파이스는 사람의 예지력을 높여주는 신비한 물질로 묘사된다.
최근 AI의 급격한 발전을 감안하면 허무맹랑한 상상은 아니다. AI의 개념이 모호했던 60년 전에 《듄》작가 프랭크 허버트의 우려는 놀라울 따름이다. 다행히 우리는 허버트를 통해 여러 가능한 미래 중 하나를 미리 엿봤다. 《듄》같은 미래는 충분히 피할 수 있다.
1964년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미국과 소련 간 핵전쟁으로 인류가 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냉전 시대엔 그런 위기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실제 핵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핵전쟁을 막기 위해 인류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AI와의 동행도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평화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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