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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 과장으로 그룹에 입사한 구 회장은 배터리를 자동차의 주 동력원으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천에 옮겼다. 1992년 영국 출장길이 계기가 됐다. 당시 부회장이던 구 회장은 한 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니라 충전하면 여러 번 반복해 사용할 수 있는 2차전지를 접하고 새로운 성장 사업이 될 가능성을 직감하고는 귀국길에 샘플을 챙겨왔다.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건 1995년 LG화학에 배터리연구소를 설립하면서부터다. 연구소를 이끌던 김 소장은 엄청난 ‘행운’을 발견했다. ‘납축전지’로 불리는 전자 기기용 배터리의 강자인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들이 관련 특허를 일본 내에만 출원한 것이다. 당시 일본은 2차전지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었다. 아사히카세이 출신인 요시노 아키라 박사가 리튬이온 배터리의 음극재를 처음 개발했다. 이때가 1985년이다. 이 공로로 요시노 박사는 2019년 노벨화학상 공동 수상자 3명 중 한 명에 선정됐다.
하지만 일본 기업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자동차에 장착할 수 있다는 발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배터리에 관한 한 초격차를 달성했다는 자신감은 해외에 특허를 출원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막았다. 지나친 자신감이 독이 된 것이다. GM의 실패도 호재로 작용했다. GM은 1996년 납축전지를 장착한 최초의 전기차 ‘EV1’을 내놨지만, 시장 창출에 실패하고 2002년 전기차 상용화 계획을 백지화했다.
기술 강국이 머뭇거리는 사이, 구 회장의 선견지명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새천년 비전을 발표하던 2000년, 구 회장은 전기차용 배터리가 향후 LG그룹의 핵심 미래 사업이 될 것임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2002년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인픽스에서 열린 레이싱카 대회에서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을 출전시켜 1997년 도요타 니켈MH 전지를 탑재한 프리우스의 종전 기록을 갈아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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