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1.5배 '원전 파운드리'…SMR 원자로 용기 뚝딱

입력 2024-06-05 18:55   수정 2024-06-06 01:33

지난 4일 찾은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은 제철소를 연상하게 했다. 높이 22m, 너비 9m에 달하는 2000억원짜리 프레스 기계는 연신 빨갛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두드렸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쇳덩이를 때릴 때마다 조정실 바닥이 흔들렸다. 열을 식히는 동안에도 1200도를 넘나드는 쇳덩이 표면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에너지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소형모듈원자로(SMR)의 틀인 ‘원자로 용기’를 만드는 모습이다. 연료봉, 증기 발생기 등 핵심 부품이 모두 여기에 담긴다. 이렇게 제작한 원자로 용기는 미국 최대 SMR 업체인 뉴스케일파워가 추진하는 SMR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된다.

○세계 첫 SMR 제조 설비
지난 3월 가동에 들어간 두산에너빌리티의 창원 SMR 공장은 ‘글로벌 1호 SMR 전용공장’이다. 서울 여의도의 1.5배에 달하는 430만㎡ 면적에 쇳물 주조부터 원전 설비 완제품까지 일괄생산 시스템을 들여놨다.

2033년 724억달러(약 98조원) 규모로 커질 SMR 시장에 경쟁사보다 먼저 발을 들여놨다는 얘기다. 출력량이 300㎿ 이하인 SMR은 대형 원전보다 훨씬 작은 데다 건설비도 10분의 1에 불과하고, 방사성 물질 누출 위험도 거의 없어 ‘꿈의 에너지’로 불린다. 그 덕분에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단지 바로 옆에 설치할 수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SMR에 들어가는 부품 중 원자로 용기, 증기 발생용 튜브 밴드, 원자로 등 핵심 부품을 제작한다. 발주 기업의 주문대로 ‘맞춤형 제작’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파운드리(수탁생산)’인 셈이다. 두산의 힘은 단조 능력에서 나온다. 쇳물을 뽑는 것부터 최종 제품 생산까지 한곳에서 다하기 때문에 품질이 뛰어나다. 창원공장에는 철을 녹이는 전기로부터 프레스기기까지 단조에 필요한 모든 설비를 갖췄다.

창원공장에 있는 프레스기기의 압력은 1만7000t에 달한다. 성인 남성 24만 명이 동시에 한 지점을 누를 때의 힘이다. 이 기기로 SMR 단조품을 두드리고 열처리하는 과정을 5~6개월 반복한다. 소재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회사 관계자는 “원자로가 가동할 때 내부 온도는 350도까지 상승하고, 압력은 태풍의 160배인 160기압으로 뛴다”며 “이런 온도와 압력을 버텨낼 정도로 단단하게 만들어야 방사성 물질 누출 걱정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탈원전 역풍에도 투자 확대
두산은 문재인 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을 밀어붙일 때도 설비투자를 계속했다. 미리 준비해야 SMR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해 7월부터 수백억원을 들여 전체 생산라인을 증축했다. 올해는 1058억원을 투입해 SMR용 생산 설비를 확충한다. 내년까지 총 4300억원을 쓸 예정이다. 뉴스케일파워로부터 주기기 공급 계약을 따낸 덕분이다.

대형 원전 부문에서도 낭보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3월 한국수력원자력과 2조9000억원 규모의 신한울 3·4호 주기기 공급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등과 팀을 꾸려 ‘체코 30조원 원전’ 입찰에 뛰어들었다. 경쟁국은 프랑스 한 곳뿐이다. 체코 정부는 이르면 이달 말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창원=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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