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3일 A 변호사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A 변호사는 1998년부터 판사로 재직하다가 2016년 국내 최대 B 법무법인에 파트너로 입사해 구성원 50명을 이끄는 조세팀장을 맡아왔다. 그는 2020년 6월 광주고등법원에서 변론하던 중 법정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동맥류 파열로 사망했다.
이에 유족이 산재보험법상 유족급여를 청구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A 변호사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부지급 결정을 내렸다. 대형 로펌 지분을 보유한 파트너 변호사는 그동안 근로자로 보지 않는 게 통념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A 변호사가 산재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법무법인은 근무시간, 휴가 및 출장 등 각종 복무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파트너도 이를 적용받아 왔다”며 “법인의 주요 경영사항에 관여했다고 볼 자료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록 법인으로부터 개별적인 지휘·감독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전문적인 지적 활동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변호사 업무 특성에 기인하는 것일 뿐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지표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근로시간을 바탕으로 과로도 인정했다. 공단은 입·퇴실 시간 기준으로 주 50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타임시트(고객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업무 시간과 법인 행정 업무를 하는 시간) 시간, 수행 운전원과 경비일지의 기록 등을 고려하면 발병 전 4주간 주당 평균 업무시간은 약 56시간”이라고 인정했다.
과로와 사망 사이 인과관계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A 변호사가 맡아서 1, 2심서 승소한 사건이) 대법원에서 패소 취지로 파기되고 중요 사건에서 배제되는 등 업무와 관련된 정신적 압박과 스트레스 요인이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유족을 대리한 김용문 덴톤스리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전문직 종사자의 근로시간 계산에서 업종 특수성과 잠재된 정신 노동시간을 반영한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곽용희/허란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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