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일 딜레마' 빠진 한국 축구, 제2의 클린스만 또 필요할까 [서재원의 축구펍]

입력 2024-06-15 17:40   수정 2024-06-15 17:45



한국 축구대표팀이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을 무난하게 통과했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전 감독 경질 후 약 4개월가량 정식 사령탑은 없었지만, 2명의 임시 감독이 지휘봉을 넘겨받으며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본격적인 장도에 오르기 위해선 확실한 플랜을 갖춘 정식 사령탑을 하루빨리 선임해야 한다.

김도훈 임시 감독이 이끈 한국은 지난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중국과의 2차 예선 C조 최종 6차전에서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5승 1무(승점 16)를 기록해 조 1위로 3차 예선에 진출한 한국은 오는 20일 발표될 FIFA랭킹에서 아시아 3위 자리를 지켜 조 편성 1번 포트(톱 시드)에 들어가게 됐다. 까다로운 상대인 일본과 이란을 피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북중미월드컵부터 아시아에 배정된 본선행 티켓이 4.5장에서 8.5장으로 대폭 늘어났다. 3차 예선은 18개 팀이 참가해 6개 팀씩 3개 조로 나뉘어 경쟁하는데, 각 조 1·2위 6개 팀이 본선에 진출한다. 각 조 3·4위 6개 팀이 4차 예선을 치러 2장의 본선행 티켓 주인공을 가리고, 5차예선과 대륙 간 플레이오프를 치러 마지막 0.5장의 주인이 결정된다. 3차 예선 톱 시드 진출이라는 한고비를 넘긴 한국은 이제 약 4개월째 공식인 정식 사령탑 찾기에 집중해야 한다. 대한축구협회의 시간이 돌아왔다는 뜻이다.
◆헛발질 연속이었던 사령탑 찾기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월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한 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을 중심으로 전력강화위원회를 구성해 새 감독 선임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전력강화위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애초 3월부터 정식 감독 체제로 축구대표팀을 운영하기로 뜻을 모았으나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임시 사령탑 선임으로 방향을 틀었다. 황선홍 23세 이하(U-23) 대표팀 전 감독이 3월 A매치 기간 임시 지휘봉을 잡은 이유다.

전력강화위의 헛발질은 계속됐다. 3월을 임시 사령탑 체제로 소화한 뒤 5월에 정식 감독을 세운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이마저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당시 3월 A매치를 1승1무로 무난하게 이끈 황선홍 감독이 유력 후보로 평가됐지만, 황 감독이 이끈 U-23 대표팀이 2024 파리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충격 탈락하면서 자연스럽게 후보에서 제외됐다. 올림픽 본선 진출에 집중해도 모자랄 황 감독에게 무리하게 겸직을 맡긴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 과정에서 전력강화위의 협상력도 바닥을 드러냈다. 외국인 사령탑을 선임하겠다며 접촉했던 제시 마쉬(미국) 전 리즈 유나이티드 감독과의 협상은 끝내 결렬됐다. 마쉬 감독은 한국과 캐나다 대표팀 감독직을 저울질하다가 캐나다 축구협회와 손을 잡았다. 차기 후보로 거론됐던 헤수스 카사스 이라크 대표팀 감독, 세뇰 귀네슈 전 튀르키예 대표팀 감독과는 협상 테이블에도 앉지 못했다. 결국 전력강화위는 또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6월 A매치 2경기를 김도훈 감독에게 임시 지휘봉을 맡겼다.
◆183일 딜레마에 빠진 한국 축구


마쉬 감독과 협상이 실패로 끝난 결정적인 이유는 ‘돈’이었다. 축구계 관계자에 따르면 협회가 마쉬 감독에게 제시한 연봉은 세전 200만달러(약 27억8000만원) 안팎이지만, 마쉬 감독은 세후 200만달러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전과 세후 연봉을 따지는 과정에서 ‘183일 딜레마’가 발생한다. 소득세법상 외국인이 한국에 183일 이상 체류할 경우 ‘거주자’로 분류돼 최고 49.5%(지방세 포함)에 달하는 세율을 적용받는다. 하지만 외국인이 한국에 183일 미만으로 머물면 소득의 22%만 세금으로 낸다. 클린스만 전 감독이 한국 체류 기간을 최소화하려고 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실력 있는 외국인 감독은 연봉이 높다. 결국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려면 세금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국내 체류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협회 입장에서는 클린스만 전 감독이 남긴 최악의 사례로 인해 ‘국내 체류’라는 조건을 포기하기도 힘들다.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전 감독의 경우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국내 체류가 가능했다.
◆제2의 클린스만이라면 국내 지도자?
충남 천안에 건설 중인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를 위해 300억원의 대출을 받은 대한축구협회의 재정은 빠듯하다. 100억원에 가까운 클린스만 전 감독과 코치진의 위약금까지 지급하느라 재정적 부담이 더해졌다. 현실적으로 마쉬 감독 이상의 이름값을 가진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긴 힘든 실정이다.

게다가 월드컵 본선까지는 2년밖에 남지 않았다. ‘국내 체류’ 조건을 포기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외국인 감독 선임만 고집하던 전력강화위가 한발 물러선 이유다. 정해성 위원장도 현재까지 추려진 12명의 최종 후보에 국내 지도자가 포함돼 있다고 밝히면서 “깊이 있는 고민을 해서 한국 축구에 가장 잘 맞는, 한국 축구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감독으로 선임하겠다”고 했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능력 있는 외국인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을 맡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며 “검증되지 않은 외국인 감독을 선임할 바에는 현시점에선 검증된 국내 지도자가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클린스만 선임 때부터 모든 게 잘못됐다”며 “한국 축구가 잃어버린 1년 반의 시간에 대해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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