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배임죄의 적용 범위 및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형법상 횡령이 금전 등 구체적인 재산을 빼돌려 이익을 취한 행위인 것에 비해 배임은 모호한 ‘재산상 이익’으로만 명시돼 있다. 더욱이 손해가 실제로 발생했을 때뿐만이 아니라 손해 발생의 위험성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이해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배임죄 고발이 가능하기 때문에 고발 역시 잦다. 업무상 배임죄 신고 건수가 연간 2000건 이상을 항상 웃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렇다 보니 국내 10대 그룹 총수의 상당수는 배임죄로 기소된 전력이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경영권 불법승계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지 3년5개월 만에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업무상 배임죄를 비롯해 19개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 하지만 2심 재판이 지난달 말 시작되는 등 대법원 확정 판결까진 수년간의 시일이 더 걸릴 전망이어서 경영활동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승연 한화 회장도 계열사 부당 지원에 따른 특경법상 배임죄로 기소돼 2014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어떤 개인적 이득을 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실 계열사도 살려냈지만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난 14일 배임죄 폐지를 제안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020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경제범죄형사부장 시절 이 회장을 업무상 배임죄로 기소했다. 이 원장은“배임죄 기소를 제일 많이 해 본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더 설득력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법무부 등 관계부처도 배임죄 폐지를 놓고 본격 논의할 예정이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상법을 개정하되, 배임죄 폐지 혹은 경영판단원칙 법제화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다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야당은 소액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이사 충실의무 확대를 담은 상법 개정에 적극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배임죄 폐지와 관련해선 당 차원에서 아직까지 공식 논평은 없다.
강경민/김익환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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