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교환, 너무 매력적입니다. 갖고 싶어요." 배우 이제훈이 영화 '탈주'를 통해 호흡을 맞춘 구교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이종필 감독은 "이제훈 배우가 왜 저렇게까지 할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긴박한 전개 위 이제훈의 생고생과 구교환의 매력들이 똘똘 뭉쳐져 뜻밖의 재미와 교훈을 안긴다.
영화는 휴전선 인근 북한 최전방 부대에서 10년 만기 제대를 앞둔 중사 규남(이제훈)으로부터 출발한다. 규남은 미래를 선택할 수 없는 북을 벗어나 '실패'라도 할 수 있는 철책 너머로의 탈주를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그러나 규남의 수상한 계획을 알아챈 하급 병사 동혁(홍사빈)이 먼저 탈주를 시도하고, 그를 말리려던 규남까지 졸지에 탈주병으로 체포된다.
탈주병 조사를 위해 부대로 온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운전기사의 아들이었던 규남을 탈주병이 아닌 탈주병을 체포한 영웅으로 둔갑시키고 사단장 직속보좌 자리까지 마련해준다. 그러나 규남은 의미 없이 사느니 죽더라도 희망을 꿈꾸기 위해 맹렬하게 남으로 직진한다.
북한 병사들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탈주'는 이데올로기적 영화가 아니었다. 남한에 사는 우리도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자극한다.
17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이 감독은 "아프리카 청년이 비행기 바퀴에 몸을 묶고 밀입국했다는 해외 토픽을 읽었다. 그쯤 한 친구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다며 술 취해서 울었다. '탈주' 시나리오를 봤는데 그런 마음들이 규남과 비슷할 것 같더라"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를테면 대한민국 캐릭터가 나오면 남북, 이데올로기, 휴머니즘과 같은 이야기가 되는데 저는 북한이라고 하는 언어와 생김새가 같거나 비슷한 배경으로 인간의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그러면서 "관객들이 꿈을 꿨는데 북한에 온 것 같은, 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콘셉트가 중요했다. 자신의 의지로 달려 나가고 있는 캐릭터를 통해 처음엔 악몽이었으나 짜릿한 꿈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구교환의 캐스팅은 이제훈의 적극적인 러브콜로 성사됐다. 과거 이제훈은 2021년 한 시상식에서 "구교환 배우와 꼭 같이 연기하고 싶다"며 손 하트를 보냈고, 구교환은 시상대 위 이제훈을 향해 다시 손 하트로 화답했다. 결국 두 사람은 '탈주'에서 만나게 됐다.
이제훈은 "'탈주'를 만나며 상대역에 대해 상상했는데 저의 사심이 시상식에서 표현이 된 것"이라며 "구교환이 당황스러웠을 수 있지만 같이 하고 싶은 열망이 컸기에 표현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손 하트를 했더니 구교환이 손 하트로 화답해서 같이 '탈주' 해보자고 시나리오를 보내드렸는데 금방 답이 왔다. 꿈 같았다"고 털어놨다.
이제훈은 구교환과 촬영을 하면서 "왜 이제야 만났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그는 "진작 만났으면 행복이 더 빨랐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내내 너무 즐거웠다"고 기쁨을 드러냈다. 아울러 "현상이란 역할은 구교환 배우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다"며 "지금까지 봤던 작품 중 이렇게 새롭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었나 할 정도로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너무 기뻤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구교환은 "좋아하는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이제훈에게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영화 공부를 시작하며 이제훈 배우를 염두에 두지 않은 적이 없다. 손 하트를 받았을 때 그래서 찐 표정이 나왔었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심지어 시나리오까지 받아서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작업하면서도 규남-현상의 전사가 있는데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프리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을 정도로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밝혔다.
이 감독 또한 구교환은 항상 함께하고 싶었던 배우였다고 했다. 그는 "오랫동안 이제훈이 원했던 캐스팅"이라면서도 "구교환을 캐스팅하기 위해 현상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리려고 시나리오 각색을 했다"고 거들었다.
극 중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남쪽을 향해 미친 듯이 뛰는 규남의 모습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가슴에 맺히는 부분이다.
이제훈은 "규남의 전사를 많이 생각했다. 10년 군 복무 후 제대해도 갈 길이 정해져 있는데, 실패할지라도 여기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인물"이라며 "내가 여기서 잡히면 인생은 끝난다, 벼랑 끝이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절박하게 연기한 부분이 관객에게도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옆에서 봐서 아는 데 정말 극한이었다. 특히 해가 뜰 때 뛰는 장면에선, 짧은 시간 안에 뛰어야 했다. 뛰고 또 뛰고, 사람이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 복서가 헉헉거리면서도 링에 올라갈 수 있다고 하는 것처럼 '또 뛸 수 있다'고 말하는데 짠했다. 연출자로서 감사하고 미안하면서 궁금했다. 왜 저렇게까지 할까"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제훈은 영화에 진심인 사람"이라며 "규남을 통해 관객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극한까지 달리게 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구교환은 "이제훈이 영화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매력적이다. 현장에서 지켜보며 많이 반했다"고 거들어 웃음을 자아냈다.
반면 구교환이 연기한 현상은 러시아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나 보위부 장교로 탈주병인 규남을 쫓는 추격자의 역할. 보위부 장교로서 위압적인 카리스마와 집요하고 무자비한 모습, 노련한 피아노 연주 장면은 새로운 구교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구교환은 "여유 있는 추격자의 모습이다. 포마드 헤어에 립크림을 바르고 가죽 잠바를 입고, 이런 것은 본인의 불안과 두려움을 숨기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피아노 연주 장면에 대해 "피아노 연주신이 40초라고 치면, 모두 그럴듯하게 잘 칠 순 없더라. 그래서 5초를 한 달 동안 연습하자. 그 컷을 향해 가자 했다. 나머지 장면은 동선을 만들고, 나머지 5초 제대로 보여주자는 작전으로 임했다"고 밝혔다.
이제훈은 "구교환의 등장신은 탁월했다. 연기, 음악, 호흡이 모두 잘 맞아떨어졌다. 영화 시작 전 스토리보드를 디테일하게 만졌는데 극장서 딱 보여지니 너무나 큰 희열을 느꼈다"고 말했다.
'탈주'의 러닝타임은 94분. 최근 2시간이 훌쩍 넘는 작품들 사이에서 돋보인다. 이 감독은 "'시간순삭'을 성취해 보고 싶었다. 편집하면서도 더 줄일 수 없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촬영 전 이제훈과 일주일에 한 번씩 보며 '영화가 딱 끝나면 또 보고 싶어서 영화관에 들어가는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 '탈주'니까 빠른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제훈은 '탈주'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10가지도 댈 수 있다며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를 보고 '너무 재밌다'라는 반응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영화를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웠고 스크린에 내 얼굴 나오는 작품을 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달렸다. 기회를 얻어 연기를 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번 작품도 모든 걸 다 했던 것 같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스스로 '역부족이다', '남이 연기하면 더 잘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족하지만 모든 것을 걸고 하고 싶었다"며 "돈을 내고 귀중한 시간을 내서 관객이 보는 건데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남기고 싶었다. 내 진심이 관객에 잘 전달되었으면 한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구교환은 "저는 좋아하는 장면을 물으면 엔딩크레딧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이제훈이 라이방 선글라스를 쓰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여기 아니라도 저 사람은 잘 사람이라는 확신을 느끼며 울컥했다"면서도 "우리 영화의 명장면은 94분 내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만들 땐 우리 것이지만 상영이 시작되면 온전히 관객의 것"이라며 "재미있게 즐겨주시고 즐거운 시간이 되셨으면 한다. 그리고 이제훈은 제게 건강한 자극을 주는 멋진 배우"라며 마지막까지 애정을 드러냈다.
'탈주'는 오는 7월 3일 개봉.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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