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이름 난 기업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죄다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뛰어들고 있네요. 중국 화웨이(통신장비업체)와 일본 옴론(의료기기 업체)이 유럽 전시회에 대대적으로 부스를 차린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가 19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개최한 '인터배터리 유럽'을 찾은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는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국내 기업 중심 전시회인 인터배터리 행사 바로 맞은편에 문을 연 ‘EES(Electrical Energy System) 전시회’를 둘러본 뒤였다. 김 대표는 “화웨이, 옴론은 그동안 유럽에선 볼 수 없었던 기업들”이라며 “ESS 수요가 늘어나자 주력시장인 유럽을 뚫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이 총집결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에 새로 설치된 ESS는 23기가와트시(GWh)로 전년(9GWh)보다 156% 늘었다. 북미(38%), 중국(47%)의 성장률을 크게 웃돌았다. 시장에선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인해 ESS는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건 중국 기업들이다. 미국 정부가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수입 관세를 7.5%에서 25%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자, 화력을 유럽에 집중하고 있다. 화웨이는 18개홀로 구성된 EES 전시장 중 한 홀의 절반을 빌려 대규모 부스를 차렸다. 유럽 기업은 물론 한국 배터리 기업 관계자들도 화웨이 부스를 찾아 기술력를 점검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화웨이는 CATL, 비야디(BYD) 등 중국 배터리 업체로부터 배터리를 납품받아 ESS로 만든다. 이날 전시장에선 ESS 제품에 에너지 최적화 시스템을 붙인 ‘오아시스’ 솔루션을 전면에 내세웠다.
부스에서 만난 화웨이 관계자는 “최소한 가성비(가격 대 성능)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고 했다. 저렴한 중국산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탑재한 덕분에 가격 경쟁력이 높다는 얘기다. CATL, BYD, EVE의 글로벌 ESS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각각 40%, 12%, 11%에 달했다. 반면 LFP보다 15~20% 비싼 삼원계 배터리를 생산하는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삼성SDI 5%, LG에너지솔루션 4%에 그쳤다.
일본도 '연합군'을 만들어 도전장을 내밀었다. 옴론은 현재 ESS에 장착되는 고전압 장치 등만 제조하지만, 앞으론 ESS와 솔루션도 만들 계획이다. 옴론은 일본업체인 파나소닉 배터리를 장착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만난 옴론 관계자는 “일본엔 수준 높은 소재, 부품 생산기업이 많은 만큼 안정성 하나는 최고”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신제품으로 맞대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저렴한 LFP 배터리를 탑재한 주택용 ESS 제품인 '엔블록E'를 공개했다. 전력 수요에 따라 배터리 팩을 손쉽게 갈아끼울 수 있도록 한 게 강점이다. 설치도 쉽다. 가정 주부도 15분이면 설치할 수 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함께 내놓은 '뉴 모듈라이즈드 솔루션'에도 LFP 배터리를 넣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ESS 관리 시스템까지 한 번에 팔기 위해 LG전자와 공동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삼성SDI는 '프리미엄' 전략으로 승부하기로 했다. 에너지 밀도를 기존 삼원계 배터리보다 37% 끌어올린 ESS 제품인 'SBB(삼성배터리박스) 1.5'를 공개했다. 이 회사는 2026년부터는 ESS용 LFP도 양산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은 “신규 시장을 적극 개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뮌헨=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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