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 숨소리까지 울려퍼졌다, 처음 마주한 현대발레의 향연

입력 2024-06-23 13:54   수정 2024-06-23 16:40

장대비가 쏟아졌던 지난 22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불볕더위를 식하는 폭우 속에서 국립극장 하늘극장은 열기로 가득찼다. 국립발레단의 KNB 무브먼트 때문이다. KNB 무브먼트는 무용수가 안무가로서 재능을 발굴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다.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거추장스러운 의상도, 진한 화장도 없이 오로지 몸의 움직임만 집중하며 안무가들의 뜻을 구현했다. 객석과 무대는 무용수들의 숨가쁜 소리까지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무브먼트>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8개의 시리즈를 통해 59편의 작품을 소개한 바 있다. 매년 작품 세계를 확장해온 베테랑 안무가도 있지만 무용수로서 살다 안무에 도전한 신예도 있다.

가장 눈에 띈 작품은 발레리노 김준경이 안무한 '교차로(Intersection)'. 무대를 이끈 여자 주역 안수연의 활약이 컸다. 그는 올 상반기 정기공연에서 군무단원임에도 <백조의 호수>와 <돈키호테>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된 무서운 신예다.

안수연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플로어에서 독무와 파드되(2인무)를 보여줬는데, 고전 발레의 템포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가 한 손을 올려 불을 켜는 동작을 하자 소극장이 터질듯한 125비트와 함께 무대 위는 순식간에 16명의 무용수로 넘쳐났다. 워킹을 하듯 걸어나오는 모습이 패션쇼장을 방불케했고 평소 연습으로 다듬어진 신체는 유명 의류 브랜드의 모델들을 연상케 했다.



EDM음악에 몸을 맡긴 무용수들이었지만, 현대 무용의 자유로운 움직임 위주로 보여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전발레 양식에 맞춘 칼군무나 팔동작과 턴 등이 빠른 음악속에 조화롭게 녹아들어 더욱 절도 있고 꼿꼿한 느낌을 선사했다.



발레리노 선호현은 '아름다움 Me'를 통해 베토벤이 청각을 잃고난 뒤 작곡한 '비창'에서 영감을 받아 안무를 꾸몄다. 남녀 각각 2명의 무용수가 자유롭게 무대를 드나들며, 베토벤의 복잡한 내면을 유연하고 섬세한 동작과 표정으로 연기했다. 마치 드라마 발레 '오네긴'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감정 표현이 풍부한 무대였다.

이밖에 국악기의 소리를 몸으로 표현하도록 구상한 이영철(공명), 마음의 소리를 따르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에 영감을 얻은 김나연(Right), 인공지능(AI)과 인간의 사랑을 그린 박슬기(OS), 섣달그믐의 전통 풍습과 발레를 접목한 김재민(눈썹 세는 날)도 작품을 선보였다. 다양한 시공간과 문화를 다룬 작품 구성으로 객석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번 공연이 열린 국립극장의 하늘극장은 627석 규모의 돔형 소극장으로 무대는 177㎡ 원형이다. 관객들은 무용수들이 내뱉는 벅찬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관객이 드나드는 출입구로 무용수가 퇴장하는 작품도 있었는데,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순식간에 허물어진 연극적 순간이기도 했다.

이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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