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내용을 보면 안도할 상황이 못 된다. 무엇보다 여기서도 ‘삼성전자 쏠림’으로 인한 착시가 우려된다. 삼성전자 한 곳 투자액이 23조9000억원으로 1000대 기업 전체 투자액의 33%를 차지했다. 2~10위 대기업 R&D 비용을 다 합친 것(21조6000억원)보다 많으니 R&D에서도 삼성전자에 의한 착시 현상을 경계해야 할 판이다. 10위권만 벗어나면 대기업의 투자금도 1조원에 못 미친다. 한국에서나, 공정거래위원회 규제 기준에 따라서나 대기업일 뿐 투자 규모로 보면 아직 글로벌 대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인 게 우리 산업계 현실이다.
자연히 국제 비교로는 갈 길이 매우 멀다. 2022년 기준으로 글로벌 R&D 투자 상위 2500대 기업 중 한국 기업은 47곳에 불과했다. 전년 53곳에서 줄어들었다. 미국(827곳) 중국(679곳) 일본(229곳) 독일(113곳)에 비해 한참 처진다. 대만(77곳)보다도 적다. 유사한 2009년도 비교 자료를 보면 당시만 해도 한국이 중국보다 훨씬 많았는데 지금은 14분의 1밖에 안 될 정도로 대역전됐다. 여러 산업에 걸쳐 중국에 추격당하고 대만에도 밀리는 이유가 이 통계로도 확인된다.
R&D 투자는 한마디로 산업의 미래 먹거리 준비다. 지금 일어나는 매출과 이익은 모두 이전 투자의 결과물이다. 온갖 구실로 투자를 멈추면 미래도 없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배터리 바이오 모빌리티 소재 등 첨단 분야일수록 더욱 그렇다. 옛사람들이 긴 흉년에 굶주리면서도 씨앗은 어떻게든 보존한 것도 앞날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R&D 예산 배정을 두고 빚어진 지난해 논란을 돌아보면 정부부터 이 예산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민간의 R&D 투자가 식지 않도록 정부가 더 적극 나서야 한다. 관련 규제 검점은 기본이고, 기업 R&D가 활성화되도록 보조금과 세제 지원에서 마중물 정책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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