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철강의 미래는 '안갯속'…저탄소 전환 기술 투자 시급

입력 2024-07-05 06:02  

[한경ESG] -철강산업의 탈탄소 로드맵 ②



한국의 제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30%, 전체 수출액의 약 80%를 차지하는 국가경제의 핵심축이다. 특히 한국 제조업의 허리 격인 철강은 자동차, 조선, 건설 등에 기초 소재를 공급하는 주요 산업이다.

철강산업은 한국의 경제를 이끌어온 동시에 국가 총배출량의 약 15%, 산업 부문의 총탄소배출량의 약 40%를 차지하는 기후 위기의 주범이기도 하다. 이러한 철강산업은 저탄소 경제체제를 향한 국제적 동향 아래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6년 파리기후변화협약 체결 이후 많은 국가가 자발적 탄소배출량 감축목표 발표, 탄소중립 선언 등 저탄소 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또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국가의 공동 노력으로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미국·EU 간 글로벌지속가능철강협정(GSSA) 등 글로벌 탄소 규제가 확산,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추세에 발맞춰 글로벌 철강산업을 보유한 주요 선진국은 적극적으로 탈탄소 기술 개발 및 설비 전환 지원 정책을 추진 중이다. 독일과 스웨덴을 포함한 유럽 국가에서는 일찌감치 탄소배출 저감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스웨덴은 이미 탄소배출이 제로인 그린 철강을 생산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역시 최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업 및 철강 탈탄소화 추진을 시작했다. 이러한 주요 경쟁국의 철강 탈탄소화 추진은 국내 철강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한국의 철강산업은 글로벌 경쟁력 유지와 탄소중립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수소환원제철’ 주목…탄소배출원인 석탄을 수소로 대체

철강산업에서 발생하는 많은 탄소배출량의 원인은 철강을 생산하는 방식에 있다. 전통적으로 철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어온 고로 공법은 자연 상태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하기 위해 코크스를 사용하는데, 이는 석탄을 원료로 만들기에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러한 기존 고로 설비에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기술을 적용해 탄소배출을 일부 저감하는 방식이 오랫동안 추진되어왔지만, 주요 배출원인 석탄 사용을 유지하기에는 탄소배출량의 획기적 감축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따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수소환원제철 기술이다. 철강 생산 공정에 투입되는 석탄을 수소로 대체하면 이산화탄소 대신 물이 배출되고, 탄소배출량이 0이라는 수치에 도달한다. 많은 철강사가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기술로 간주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암묵적 기술 경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철강사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배출 산업의 구조적 전환을 위해서는 기존 공정을 대체할 기술개발뿐 아니라 신규 기술 실증, 신규 설비 구축 등 엄청난 양의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로벌 철강사를 보유한 주요 선진국은 관련 정책 수립을 통해 수소환원제철 기술개발 및 설비 전환 달성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대부분 국가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상용화를 통한 철강산업의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며, 정부 보조금의 상당 부분을 현존 설비 개선이 아닌 수소환원제철 설비로의 전환에 투자하고 있다.

가장 많은 양의 보조금을 투입해 철강산업의 탄소중립을 추진 중인 국가는 독일이다. 2026년부터 순차적으로 기존 석탄 기반의 철강 생산 설비인 고로를 저탄소 철강 생산 설비로 대체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10조2000억원 이상 정부 지원금 투자 계획을 확정했다.

또 다른 유럽 국가인 스웨덴의 경우 약 1조5000억원의 공공 보조금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다른 국가와 달리 스웨덴은 모든 정부 보조금을 수소환원제철 설비 전환에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다. 풍부한 재생에너지 및 고품위 철광석 부존 등 지리적 이점과 함께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통해 2025년에는 수소환원제철 설비를 가동할 예정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고로 기반의 철강 생산 비중이 낮은 미국은 비교적 최근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지원을 시작했다. 지난 3월 미국 에너지부는 철강, 화학, 시멘트 등 탄소 다배출 산업의 탈탄소화를 지원하기 위해 총 60억 달러의 연방 기금 지원을 발표했으며, 총 33개 프로젝트 중 6개 철강산업 탄소감축 프로젝트가 포함됐다. 특히 철강산업에 투입될 약 15억 달러의 보조금 중 전체 금액 3분의 2에 해당하는 10억 달러를 수소환원제철 기술개발 및 설비 전환에 배정하며, 청정 공정으로의 전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21년 2조 엔(약 18조원) 규모의 그린 이노베이션 기금을 조성해 철강, 수소, 배터리 등 14개 분야에 대한 탈탄소 기술개발 및 실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중 약 4499억 엔(약 4조491억원)을 철강산업에 지원하고 있으며, 약 1조5000억원 이상은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상용화에 투자하고 있다. 또 저탄소 철강 생산 기술뿐 아니라 미래 자원으로 불리는 그린 수소 생산 및 조달을 위한 예산까지 확정하며 산업 전반의 성공적 구조 전환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시행 중이다.



韓, 저탄소 철강 생산 전환 난관...정부 지원 턱없이 부족

대내외적 여건 변화 아래 한국 정부 역시 관련 정책 수립을 통해 저탄소 철강 생산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산업통상자원부는 해당 내용을 담은 ‘저탄소 철강 생산 전환을 위한 철강산업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이 전략에는 장기적으로 수소환원제철 설비로의 완전한 전환을 통해 철강산업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가장 큰 철강사이자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하이렉스’ 개발을 주도적으로 추진 중인 포스코의 발표에 따르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 이행으로의 전환 비용으로 약 40조원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현재까지 확정된 철강산업 탈탄소화를 위한 한국 정부 지원금은 약 2685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앞서 살펴본 다른 국가의 정부 지원금 규모와도 큰 차이가 있다.

각국의 철강 생산량과 정부 지원금 액수를 함께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은 2023년 기준 조강 생산량이 약 6700만 톤으로 생산량 세계 6위, 수출량 세계 3위의 철강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공공 보조금 규모 격차가 가장 큰 독일의 경우 철강 생산량은 한국의 절반 수준인 3500톤에 불과하지만, 지원금 규모는 38배 이상이다. 연간 조강 생산량 425만 톤으로 한국의 약 6% 수준의 철강을 생산하는 스웨덴의 경우 한국의 6배 이상 금액을 투입해 철강산업의 탈탄소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정부 보조금 규모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정부는 저탄소 철강 기술 개발 예산액으로 약 2685억원을 편성했으며, 이 중 현존 설비 개선에 2416억원, 수소환원제철 설비로의 전환에 269억원을 편성했다.

철강산업의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수소환원제철 기술개발 및 해당 설비로의 전환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저탄소 기술개발 예산액 중 약 90%가 탄소배출 감축이 제한적인 현존 설비 개선에 배정된 실정이다. 앞서 살펴본 다른 국가들이 공공 보조금의 상당 부분을 수소환원제철 설비 전환을 위해 배정한 것을 생각해보면, 한국 정부의 계획은 그 반대인 상황이기에 효과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상용화에 배정된 낮은 예산 비중의 원인은 실증 프로젝트 예산의 부재에 있다. 해당 예산편성을 위해 2022년에 실시한 탄소중립 기술개발 예비타당성조사 당시 수소환원제철 기술개발 및 실증사업을 위해 제시된 금액은 총 8000억원이었다. 하지만 이 중 269억원만 반영됐고, 이는 기초 기술개발 이후 해당 기술의 실제 적용 가능성과 효율성 등을 평가하는 실증 프로젝트 예산이 배제된 결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설비 전환 계획 구체화 필요

한국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2025년까지 기초 기술개발 완료 후 실증을 거쳐 2040년부터 순차적으로 현존 고로 설비를 모두 수소환원제철 설비로 교체해 2050년 철강산업의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수소환원제철 기초 기술개발 완료 시점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기술의 실증 및 상용화를 위한 예산과 구체적 지원 계획이 없는 현 상황에서는 한국 철강산업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기존에 없던 혁신기술이기에 기술개발 및 상용화에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주요 철강 생산국은 자국의 산업 경쟁력 확보 및 산업의 구조 전환을 위한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인지,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2030년 이전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기술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스웨덴의 경우 2025년부터 상용화 설비 구축을 통한 판매용 철강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반면, 현재 추진 중인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기술개발 수준 및 한국 정부의 설비 전환 계획은 주요 경쟁국 대비 한참 뒤처진 상황이다. 또 신규 설비 구축에 필요한 기반 및 금액을 감안하면 현재 확정된 정부 지원액은 이러한 상황을 만회하기에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한국 정부의 지원 의지에 따라 머지않아 다가올 그린 철강 시장에서 한국 철강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 특히 수소환원제철 기술 실증 설비 예산이 올해 정해지는 만큼 철강산업의 미래 경쟁력 확보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부는 철강산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 자동차·조선 등 제조업의 산업 경쟁력, 신규 기술 도입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이 가져올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고려해 적극적 재정 지원 확대를 실행하는 등 의지를 보여야 한다. 올해 정부의 판단에 따라 글로벌 ‘생존 경쟁’에서 한국의 철강산업이 살아남을지, 경쟁력을 잃을지가 결정될 것이다.

글 권영민 기후솔루션 철강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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