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은 하청노조와 교섭하라" 대법서 확정되면 벌어질 일들

입력 2024-06-25 16:57  



노동조합법에서는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그 노동조합 또는 조합원을 위하여 사용자나 사용자단체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9조 제1항). 여기서 ‘사용자’에 관하여 그동안 판례는 “근로자와의 사이에 사용종속관계가 있는 자, 즉 근로자와의 사이에 그를 지휘·감독하면서 그로부터 근로를 제공받고 그 대가로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자”를 말한다고 보고 있다. 즉, 단체교섭은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자와의 사이에 체결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기존의 판례였다.

그런데 최근 하급심(서울고등법원 2024. 1. 24. 선고 2023누34646 판결)에서는 “근로자와의 사이에 사용종속관계가 있는 자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포함된다”고 해석하면서,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원청과 하청 노동조합 사이의 단체교섭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해당 판결의 당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고, 해당 사건 역시 현재 대법원에 계속 중인바, 해당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만약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대법원에서 그대로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에, 실제 교섭 현장에서는 어떤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선 위 판결은 모든 하청 노동조합에 대한 원청의 단체교섭의무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원청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경우(즉,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경우)에 단체교섭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위 판결은 각 교섭의제별로 원청이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지를 검토하고 있는바, 일부 교섭의제에 대해서는 단체교섭의무가 인정되지만 일부 교섭의제에 대해서는 단체교섭의무가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즉, 위 판결은 어떠한 일반론도 제시하지 않고 있는바, 구체적인 상황에서 실제 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원청이 하청 노동조합과 교섭을 하여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일본과 같이 부당노동행위의 형사처벌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라면 원청이 하청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요구를 거부하고 하청 노동조합이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구제신청을 하여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절차에서 단체교섭의무를 판단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부당노동행위를 형사처벌하고 있는바, 원청으로서는 형사처벌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신이 하청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여 교섭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 물론 원청은 하청 노동조합에 대해 단체교섭당자자지위 부존재확인 등을 청구하여 법원을 통해 단체교섭의무가 있는지 사후적으로 확인할 수는 있으나, 노동조합법에서는 단체교섭을 거부하거나 해태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있어 만약 사후적으로 단체교섭의무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원청의 교섭거부행위는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해 보면, 만약 위 판결이 보편화된다면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하청 노동조합이 실질적 지배력 여부와 무관하게 원청에 대해서 단체교섭 요구를 하고 원청이 이를 거절하는 경우 하청 노동조합은 원청에 대해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면서 원청을 진정 또는 고소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될 때까지 부당노동행위 사건이 폭증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노동조합법은 원칙적으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하여 사용자가 하나의 교섭대표노동조합하고만 단체교섭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이른바 ‘1사 1교섭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 1사 1교섭의 원칙은 복수노조 도입과 관련하여 사용자의 교섭에 관한 부담을 덜기 위한 노사간의 중요한 합의사항이다. 그런데 하청 노동조합과 원청의 단체교섭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원청은 자신의 근로자로 구성된 교섭대표노동조합 뿐만 아니라 하청의 교섭대표노동조합과도 교섭을 하여야 하므로 1사 1교섭의 원칙이 무너지게 된다. 만약 원청이 수 개의 사내하청을 두고 있는 경우라면 원청은 자칫 사내하청업체의 숫자만큼 교섭을 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더욱이 이른바 ‘중층적 도급관계’로 일컬어지는 하청이 여러 단계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원수급인을 비롯한 모든 하청업체들의 근로자들이 원청에 교섭을 요청할 수도 있는바, 이 경우에 교섭창구단일화를 강제하지 않는다면 원청으로서는 매우 큰 교섭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하청의 노동조합은 원청과 단체교섭이 결렬되면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바, 하청은 자신의 경영상 판단과 무관하게 쟁의행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원청과 하청의 노동조합이 체결한 단체협약으로 인해 하청이 정한 취업규칙 또는 하청과 근로자 사이의 근로계약이 변경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독립된 기업인 하청은 하청의 노동조합과 원청과의 교섭으로 인해 경영과 인사권 행사에 여러 모로 제약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원청과 하청의 노동조합 사이에 단체협약의 체결에 의해 하청 근로자들의 주된 근로조건이 정해지고 하청이 근로조건 결정에 개입하지 못하게 된다면, 하청 근로자들에 대한 불법파견 이슈가 점점 커지게 된다. 이 경우 법원이 단순히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파견법상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을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와 같이 원청이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경우 하청의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하여야 한다는 판결은 여러모로 단체교섭제도 전반에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며, 대부분의 기업이 불필요한 법적 분쟁에 휩싸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하청의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인정할지 여부 및 그 방법에 대해서는 입법자가 신중한 논의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이고, 불법파견에 준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이상 실질적 지배력을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한다.

김종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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