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적 보호무역주의의 배후에는 경제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국가 기밀, 개인 데이터 유출 등 국가 안보에 대한 근심이 존재한다. 모든 정보가 연결된 초연결 세상에서 자율주행차나 커넥티드카를 통해 미국인의 개인정보와 동선이 유출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경제안보 기조에 유럽연합(EU)과 일본도 동참하는 모양새다. 최근 EU와 일본 등은 중국산 레거시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규제에 동참하기로 했다. EU는 사물인터넷(IoT) 제품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사이버복원력법안(CRA)에 최종 합의하기도 했다. 네트워크 연결성을 지닌 제품이 국민 생활 전반에 사용되면서 데이터 유출 위협도 커졌기에 제품은 물론 제품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SW)에 대한 인증 등 보안 의무를 강화했다.
우리나라도 경제안보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2022년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을 제정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바이오 등 첨단전략산업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관련 기술을 보호하는 게 대표적이다. 27일 시행을 앞둔 공급망안정화법은 주요국의 패권 경쟁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경학적 변수가 겹쳐 발생할 수 있는 복합적 공급망 위기를 진단하고 조기 경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위험 경보를 위한 정보 수집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현행법상 인프라 보안은 국가보안시설에 치중돼 있다. 민간의 주요 인프라를 비롯한 설비, 장비, 부품 등에 대한 보안은 곳곳에 구멍이 나 있는 셈이다.
2017년 국가정보원의 국내정보조직을 해편(해체 수준의 개편)하면서 국익에 필요한 경제안보 기능이 약화됐다. 2021년 요소수 사태를 계기로 국정원도 공급망 조직을 신설하고 경제업무 강화에 나서고 있으나 주요국의 위상에 비하면 존재감이 약하다. 전통적 안보 기능으로는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맞서기 어렵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초국가기술 미션센터를 신설해 경제안보 정보 수집·분석 기능을 강화했다. 영국 일본 호주 등도 마찬가지다.
전쟁사를 보면 승리의 이면에는 정보기관의 숨은 공로가 있다. 우리가 직면한 경제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보기관의 기능을 신안보 체제에 맞게 재편해야 한다. AI 빅데이터를 활용한 위기 징후 감지 시스템과 휴민트를 활용한 크로스체크를 통해 상호보완적 체계를 반드시 정립해야 한다. 공들여 쌓아 올린 기술력을 경쟁국에 침탈당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미래 성장에 필요한 물자, 인력, 자본, 인프라 등에 대한 안보를 강화하는 일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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