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교육? 대화도 안 통해요"…'화성 비극' 이유 있었다

입력 2024-06-25 18:00   수정 2024-06-26 01:32


국내 취업자 중 외국인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 수준이지만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중대재해 사망자) 비중은 1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4일 경기 화성시의 1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가 발생해 단일 사고로 가장 많은 18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사망하며 이들에 대한 산업안전 교육과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외국인력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아리셀의 공장 3동 화재로 전체 근로자 23명이 사망했다. 이 중 외국인은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 등 총 18명으로 단일 사고로 가장 많은 외국인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산업현장의 고질적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비전문 취업(E-9)비자를 발급하는 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를 올해 16만5000명 이상 들여온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2만 명보다 4만5000명(37.5%)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에 비례해 외국인 산재 사망자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전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874명) 중 외국인 근로자는 85명으로 9.2%였다. 지난해에는 812명 중 85명으로 비중이 10.4%로 높아졌다. 올해는 3월까지 전체 사망자 213명 중 24명으로 11.2%에 달했다. 국내에 취업한 외국인 근로자는 92만3000명(작년 5월 기준)으로 전체의 3.2% 수준이지만 사망사고 비중은 이의 네 배에 육박하는 것이다. 한국 근로자들이 기피하는 위험한 일자리를 외국인이 메우고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정책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출생·고령화로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이는 필요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업주의 형사 처벌은 사망 근로자의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며 “내국인 중심의 산재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 산재 4배 많아…외국인력 100만명 시대의 그늘
영세기업일수록 외국인 많은데…언어·문화장벽에 안전교육 부실
“안전 교육이요? 한국인 사장은 대화도 안 통하는데요. 일당 외에는 서로 관심 없어요.”

1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화재 참사가 발생한 경기 화성시 전곡산업단지 내 A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30대 태국 국적 근로자 B씨는 25일 이렇게 말했다. B씨는 약 6년 전 고용허가제 비전문 취업(E-9)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뒤 비자 기한이 만료됐지만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화성 산단에서 일하고 있다. B씨는 “여러 사업장에서 일했지만 제대로 된 산업안전 교육을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높아지는 외국인 산재 사망 비중
25일 통계청의 ‘이민자 체류 실태 및 고용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국내에 상주하는 외국인은 143만 명이며 이 중 취업자는 92만3000명에 달한다. 이는 전체 국내 취업자의 3.2%에 해당하는 비중이다.

외국인 근로자 100만 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늘도 짙어졌다. 외국인 산재 사망자 비율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국내 전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중대재해 사망자) 874명 중 외국인 근로자 비중은 85명으로 9.2%였지만 지난해에는 812명 중 85명으로 10.4%로 뛰어올랐다. 올해도 3월 기준으로 11.2%를 기록 중이었다.

눈에 띄는 점은 내국인 산재 사망자는 감소하고 있는데 외국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내국인이 기피하는 위험한 일자리를 외국인이 차지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앞으로도 산업 현장에 투입되는 외국인 수는 더 증가할 전망이다.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비전문 외국인력 도입 규모를 지속해서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5만2000명, 2022년 6만9000명에 그친 비전문 외국인력 쿼터는 2023년 12만 명으로 증가했다. 올해부터 16만5000명 이상으로 더 확대된다. 화재 참사를 겪은 아리셀과 같은 제조업체에 절반 이상인 9만5000명이 배정됐다. 정부는 필요할 경우 배정 쿼터를 초과해 외국인을 들여온다는 계획이다.
부실한 외국인 대상 안전 교육
외국인은 늘어나는데 산업안전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문제다. 중소기업 위주로 근로자를 배정하는 고용허가제 특성상 외국인은 대부분 영세기업에 취업한다. 인건비와 인력 부족 문제로 외국인을 쓰는 영세사업장이 산업 안전보건 관리를 제대로 하기란 쉽지 않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외국인 근로자의 산재현황 파악 및 제도개선 연구’ 보고서에서 “외국인 근로자는 유해 위험 요인이 많고 작업환경이 열악한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주로 근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언어와 문화 장벽까지 겹치면서 대형 사고 위험성은 더욱 크다. 고용부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근로자는 입국 후 15일 내 취업 교육기관에서 16시간 동안 교육받는다. 하지만 산업안전 관련 교육은 4~5시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현장 교육이 아니라 교재 위주의 교육으로 이뤄진다. 이러다 보니 지난해 기준 사업장 근무 기간 1개월 이내 사고 비율은 내국인은 16.1%인 반면 외국인은 26.8%에 달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법을 지키는 시늉을 하느라 작업 전에 함께 모여 산업 안전 구호를 외치는 ‘툴박스 미팅’을 하지만 외국인들은 뜻도 모르고 소리만 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아리셀처럼 외국인들이 ‘도급·파견’ 인력이라면 현장 상황에 어두워 산재 위험성이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만난 한 인력업체 관계자는 “아리셀처럼 파견·도급 형식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데려다 쓰는 사업장도 부지기수”라며 “화성 일대 산업단지는 외국인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화성은 전국 기초지자체 중 가장 많은 제조업체(2만758개)가 몰려 있고 고용허가제 외국인 수도 2만3460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고용부 한 산업안전감독관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16개국 언어로 번역한 안전관리 교재를 배포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며 “개별 공장마다 제각각인 근로 환경 등을 반영한 맞춤형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은 “당국은 이번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정책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철오/곽용희 기자 che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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