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갈던 한화는 지난 2월 1000마력급 전차용 엔진을 독자 개발하는 데 성공해 K9 자주포에 장착하기 시작했다. 이제 K9 자주포를 수출할 때 독일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가스터빈 시장의 강자인 두산에너빌리티도 엔진 개발에 합류했다. 두산이 2019년 세계 다섯 번째로 개발한 가스터빈은 국내 여러 화력발전소에 들어서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투기 엔진은 응축된 공기에 연료를 태워 터빈을 돌린다는 점에서 가스터빈 발전 방식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항공기 부품 제조 역량을 갖춘 한화와 터빈 기술을 보유한 두산이 힘을 합치면 전투기 엔진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점을 들어 합작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두 회사는 차세대 전투기에 들어갈 엔진 개발 관련 ‘개념설계’에 함께 참여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는 ‘기본설계’ 단계부터는 두 회사 모두 단독 참여한다는 의사를 방위사업청에 건넸다.
연구개발(R&D)에 드는 돈은 방사청이 댄다. 업계에선 사업비가 향후 10년간 3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소재 개발과 부품 가공기술 내재화를 포함하면 사업비는 5조원 이상으로 훌쩍 뛴다. 엔진 개발에 성공하면 한국형 전투기 KF-21을 개량한 기체에 실린다.
한화와 두산이 자체 엔진 개발에 뛰어든 건 각국의 수출 통제 때문이다. 미국 등 35개국이 참여한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MTCR)에 따라 첨단 무기와 부품은 개발사 승인 없이 수출할 수 없다. KF-21에 장착되는 엔진도 GE가 라이선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마음대로 수출할 수 없다. 해외에 기술을 이전할 수 없는 구조다 보니 항공 엔진의 핵심 기술은 영국 롤스로이스PLC와 미국 GE 및 프랫&휘트니(P&W) 등 3사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김종훈 한화에어로스페이스USA 글로벌엔지니어링팀장은 “회전체 기술을 확보하면서 항공 엔진에 들어가는 모든 철강 부품을 자체 생산할 수 있게 됐다”며 “덤으로 110여 개에 달하는 미국 항공 엔진 부품 제조 네트워크도 갖췄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한화가 항공 엔진과 관련한 기술을 대부분 터득한 만큼 몇몇 부족한 기술만 채우면 독자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화는 엔진 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해 현재 250명 정도인 연구 인력을 2028년 800여 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또 1일 엔진부품사업부와 항공사업부, 미래항공연구소를 통합한 ‘항공엔진사업부’를 출범했다.
두산도 3월 주주총회에서 ‘항공기 엔진 제작’을 사업 목적에 추가하는 등 독자 엔진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발전용 가스터빈 제조 기술을 전투기 엔진에 접목한다는 구상이다. 엔진이 뿜어내는 1500도 이상 초고열을 이겨낼 수 있는 냉각 및 코팅 기술을 확보한 것도 두산이 독자 엔진 개발에 뛰어든 배경으로 꼽힌다.
오현우/김형규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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