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34449.1.jpg)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 있는 실버복지주택 '더 시그넘 하우스'를 찾았다. 평일 오전 시간인데도 로비는 고연령 입주자로 북적였다. 여성 고령자 두 명이 바둑을 두고 있었고, 다른 고령자도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부는 비 내리는 정원을 감상하며 음악을 듣기도 했다. 이날 방문 전까지만 해도 다른 실버복지주택처럼 고요하고 적막한 모습을 상상했다. 실제론 시끌벅적한 어르신의 웃음소리에 '고령자끼리만 있어도 이렇게 사람 사는 느낌이 들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34490.1.jpg)
인기 비결은 입지였다. 서울 강남 업무지구의 중심인 강남역까지 차로 30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매우 좋다. 여기에 강남권 내에서도 몇군데 안 되는 넉넉한 녹지를 갖춘 대모산 자락에 있다. 도심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연중 산의 정취와 녹음, 맑은 공기를 즐기며 지낼 수 있다는 점이 고령층 선호 이유라는 설명이다. 이기동 더 시그넘 하우스 운영총괄 부사장은 "전원형 단지는 공기는 좋지만 지방이나 외진 곳에 있어 가족이 방문하기 어렵지만, 이곳은 주말마다 자녀 등이 찾아 식당과 게스트룸이 항상 북적인다"며 "어르신도 애초에 가족과 자주 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이곳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40897.1.jpg)
입주 예정일 기준 만 60세 이상이면 자격이 된다. 부부라면 한 명만 만 60세 이상이면 된다. 하지만 실제 진입장벽은 다소 높은 수준이다. 169가구 중 72가구로 가장 많은 전용 52㎡를 기준으로 보증금은 5억6000~6억4000만원이다. 월 생활비는 독신 기준 233만원, 부부라면 325만원을 내야 한다. 월 생활비엔 직원 인건비, 공용시설 유지비, 소모품비, 가구별 청소비에 월 60식의 식사비가 포함된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40898.1.jpg)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예상외로 대기자가 많다. 예약금을 1000만원씩 내야 대기 순번을 받을 수 있는데도, 입실을 기다리는 대기자만 120명이다. 인기 있는 구조나 조망이 좋은 방은 4~5년을, 선호도가 떨어지는 방은 1~2년을 기다려야 입주할 수 있다는 게 관계자 설명이다. 한번 들어오면 나가려는 고령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에 2017년 입주 시작 당시 계약기간을 두지 않기로 했던 것에서 최근 4년 계약으로 바꿨다.
더 시그넘 하우스를 짓기 전 박 회장은 '실버세대 천국'이라 불리는 일본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유명하다고 소문난 일본 실버복지주택 수십 곳을 직접 답사하고 장단점과 특징을 기록해 왔다. '실버주택=복지사업=적자'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사업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였다.
2017년 그렇게 문을 연 더 시그넘 하우스는 적자경영 상태인 여타 실버복지주택과 달리 지난해 작은 규모지만 영업 이익을 거뒀다. 이 부사장은 "사업적 가능성을 보고 국내 여러 대기업 관계자도 방문해 운영 노하우를 묻고 가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그 덕에 올해 초 인천 청라국제도시에도 '더 시그넘 하우스 청라'가 새로 문을 열었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34479.1.jpg)
![](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34474.1.jpg)
요양센터가 실버복지주택 단지 인근에 따로 있는 경우는 있지만 아예 한 건물에 함께 있는 곳은 국내에 이곳이 처음이라는 게 시설 관리자의 설명이다. 건강한 고령 입주자가 갑자기 거동이 불편해지거나 치매 증상이 오더라도 다른 요양시설로 옮기기 전 곧바로 '너싱 홈'에서 관리를 받으며 그대로 지낼 수 있다. 이 부사장은 "부부가 같이 입주했는데 남편이 건강 악화로 너싱 홈으로 옮겼다"며 "한 건물에 있으니 아내가 매일 아침 너싱홈으로 문안을 온다"고 말했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34473.1.jpg)
남녀 사우나는 물론 탁구장, 헬스센터, 영화관, 안마의자, 노래방, 당구장, 서예실, 명상실, 작은 도서관까지 고급 리조트에서나 볼 수 있는 시설도 갖추고 있다. 그중에서도 도서관 운영은 흥미로웠다. 집에 장서를 보유하신 어르신이 입주하면서 처분하기 힘든 책을 이곳 도서관에 기증한 뒤, 마치 개인 서재처럼 드나들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구조다. 시설 관계자는 "시설에서는 추가로 책을 구매하지 않아도 되고, 입주자도 집에서 읽던 책을 그대로 읽을 수 있고, 또 가구별로 별도의 서재나 책을 둘 공간을 마련하지 않아도 돼 1석 3조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34469.1.jpg)
지방 접근성도 좋은 편이었다. 마찬가지로 차를 타고 SRT 수서역까지 가봤는데 8분이 소요됐다. 하지만 이곳 입주 고령자들의 평균 연령은 85세로, 90세가 넘는 입주자도 있었다. 운전하기 어려운 연령대다. 더 시그넘 하우스는 입주자에게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1시간에 한 대씩 단지에서 수서역과 삼성서울병원 앞까지 왕복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거주 중인 고령자들은 물론 지방에 거주 중인 가족들까지도 셔틀버스로 쉽게 단지에 오갈 수 있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234463.1.jpg)
입주자가 방 구조만큼이나 중요시하는 요소가 또 있었다. 바로 식사다. 더 시그넘 하우스 관계자는 "방과 더불어 입주 고령자들이 입주 전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바로 밥"이라고 전했다. 이날 운 좋게 점심시간이 겹쳐 어르신들과 똑같은 식사를 해볼 수 있었다. 1식에 1만1000원임에도 가짓수가 많았고 고령자에게 맞춰 저염식으로 제공됐다.
저렴하게 노유지를 매입해 지어진 만큼 풀리지 않는 제약도 있었다. 노인복지주택 등 노인 의료복지시설로 등록된 노유지에선 임대사업 등을 할 수 없어 내부에 1차 병원이나 의료기관을 유치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한계를 더 시그넘 하우스는 지역사회와의 연계로 풀어냈다. 인근 1차 병원 원장이 매일 아침 무료로 왕진해 너싱홈에 거주 중인 중증 고령자를 진료해주고 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관련뉴스